두달전 대구시청에서는 재미있는 실험이 벌어졌다. 기업에서나 볼 수 있던 인사 시스템을 처음 적용한다고 해 시청 안팎이 떠들썩했다. 국장이 과장을, 과장이 계장을, 계장이 부하 직원을 직접 선택하고 부서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순서 지키기'를 선호하는 공무원 사회에서는 전례없는 파격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됐을까?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과장급 인사만 새 인사 시스템에 따라 이뤄졌을뿐, 하위직 인사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계장, 직원의 경우 각 실·국의 반발 등으로 예전에 해오던 방식을 상당부분 답습했다.
사람 몸으로 치면 머리 쪽만 고쳤을 뿐, 몸통과 손발은 거의 손도 대지 못하고 그대로 놔뒀다는 얘기다. 외부에는 그럴 듯하게 알려졌지만, 정작 알맹이는 쏙 빠져 버렸다. 김범일 시장의 '뒷심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또다른 사례를 보자. 지난 7월 김 시장 취임 후 시청 안팎에서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평소 김 시장이 공무원의 구태의연한 자세를 강하게 질타 해온데다 조직개편에도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구경북연구원과 대구시장직 인수자문위원회는 경제살리기의 일환으로 외부 전문가를 본부장으로 하는 경제통상본부를 신설하라는 조직개편안을 건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실·국장들이 '정무 부시장이 있는 상황에서 경제통상본부는 옥상옥(屋上屋)'이라고 강하게 반대하자 조직개편안은 슬그머니 뒤로 미뤄졌다. 시장의 '결단력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더구나 경북도가 지난달 투자통상본부를 신설, 본부장 공모에 나서는 바람에 대구시의 체면이 상당부분 구겨졌다. 김 지사가 도청 간부들의 반발을 물리치고 조직개편을 강행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장과 지사의 성향을 비교하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같은 관료 출신이지만 엘리트 공무원과 비(非)엘리트 공무원의 차이일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김 시장이 취임초에 첫 단추를 제대로 꿰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솔직히 그는 많은 장점을 가진 분이다. '일 중독자'로 불릴 정도로 열성적이다. 시장과 자리를 함께 한 사람이라면 일하는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데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비서진에게 다음 스케줄을 챙기게 하고 보고서를 가져오게 할 정도로 바쁘다. 요즘도 한푼의 예산이라도 더 따기위해 1주일에 한두번씩 꼭 서울을 찾고 있는 만큼 예산과 관련해 가시적인 성과도 여럿 있다.
어쨌든 취임 4개월이 돼가는 김 시장이 현재까지 넓은 범위에서는 대구 전체, 좁의 범위에서는 공무원 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는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비해 공무원 사회가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바뀌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 혼자 열심히 뛰는데 공무원들은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지적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니겠는가.
이런저런 점을 감안해 김 시장의 현재 성적을 굳이 매겨본다면 'C'정도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잘못 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수다. 대학생으로 친다면 이제 막 1학년 1학기 성적표를 받아쥔 셈이니 앞으로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있다.
사실 '개혁' '변화' '새바람' 같은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행위는 모두 취임 초에 이뤄진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노무현 정권이나 DJ 정권은 물론이고 역대 시장들도 그러했다. 임기 말기에 새 그림을 그리거나 기풍을 다시 세운 사례는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변화는 힘과 열정이 넘쳐날 때 가능하다. 에너지가 소진되고 관성에 젖었다고 느낄 때는 이미 시기를 놓친 것이다. 더욱이 자기 식구나 부하의 처지만 이해하고 감싸려고 든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우리가 김 시장의 취임 초기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박병선기획탐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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