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가절(仲秋佳節)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풍성하고 다채로운 가을 수확을 기리는 축전의식이나 행사들은 유사 이래로 전세계를 통해 열려왔다.
한국에서는 이 명절을 '추석' 또는 '한가위'라고 부르고,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이라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하비스트 축제' (Harvest Festival)라는 명칭의 유사한 행사가 있다.
한편 호주에서는 라벤더, 포도, 사과, 홉 열매, 오렌지, 사탕수수, 밀 등 각각의 곡식 및 과일들의 수확시기에 맞추어 연중 다양한 축제와 향연이 벌어진다. 북미지역에서도 추수감사절은 여전히 중요한 명절이다.
하지만 영국의 상황은 다르다. 하비스트 축제는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교회나 학교에서만 행사가 이루어진다. 필자는 그러한 이유로, 한국에 와서 처음 맞았던 추석 명절 때 서울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집단적 대이동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지상을 통해, 고향 길로 향하는 고속도로나 국도 상에서 교통체증이 해소되기를 온종일 기다리며 준비해온 간식을 나누어 먹거나 이리저리 서성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서울을 여행하면서,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룬 버스터미널을 목격했다. 이때 필자는 오히려 텅 빈 서울지하철을 탈 수 있어서 즐거웠다. 모든 사람들의 동시적이고 한결같은 움직임과 모습이 서구의 개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관점에 익숙했던 필자에게는 신기해 보였고, 한국의 집단문화가 이와 같은 상황을 창출해 낸다고 추정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추석 명절에 담긴 더 깊은 뜻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고향과 가족 그리고 조상을 기리는 아름다움, 나아가 이러한 부분들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중추명월(中秋明月)이라는 상징적으로 뜻 있는 시기에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은 필자에게 동양문화 뿐만 아니라 미국문화도 처음으로 경험하게 해주었다. 추석에 대한 나의 첫 문화충격에 이어 미국 및 캐나다 출신의 동료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추수감사절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가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추수감사절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던 초기 선조들을 회고하는 의미를 가진 반면, 영국의 하비스트 축제는 하나의 종교적 행사로 조상을 기리는 전통과는 무관하다는 큰 차이가 있다.
영국은 더 이상 농경사회도 아니고, 하비스트 축제가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처럼 상업화되지 않다 보니, 현대를 살아가는 영국인들의 삶에서 그 관련성도 사라져가는 듯 하다.
필자의 유년 시절, 교회에서 '밭을 갈고 그 땅 위에 좋은 씨앗들을 뿌립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제단을 장식할 옥수수 막대기를 만들던 기억들이 이제는 마치 먼 나라 다른 시대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사람들이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고 조상들의 묘에 벌초를 하며 '고향과 따뜻한 가정의 단란함'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장 오래된 서구 문화보다 두 배나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한국 문화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오늘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앤드류 핀치 (경북대 영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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