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초가을의 자선냄비

입력 2006-09-28 11:34:47

되풀이해 들어도 기분 좋은 이야기가 있지요. 'FC바르셀로나'라는 축구팀 소식도 그랬습니다. 유럽 프로축구팀들의 큰 수입원 중 하나라는, 유니폼에 붙이는 기업체 로고와 관련된 것입니다.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 부문에서 가장 큰 소득자랬습니까? AIG보험 표지를 일 년간 붙이는 대가가 254억 원가량이라 했지요 아마. 한국의 삼성전자는 첼시 팀에 같은 목적으로 연간 186억 원을 지불한댔고요. 도박 사이트의 샌드위치맨 역할을 해 주고 돈을 버는 축구팀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만은 그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근래 재정난이 심해졌지만 그 길만은 바꾸지 않았다고요.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가 연간 211억 원을 제시했지만 퇴짜 놨다지요. 펩시콜라도 채였답니다. 혹시 국내의 어떤 탤런트 분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제 원로가 된 그분은 '나는 연기자일 뿐'이라며 평생 광고 출연을 거절하고 산다지요. 그 이야기에 가슴 뭉클해졌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혼'이나 '몸'을 파는 일이 아닐지라도 본분 밖의 일로 이익 구하기를 不純(불순)하게 여기는 사람은 있어야 더 살맛 날 세상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던 바르셀로나가 근래 '變節(변절)'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13일 경기 때부터 선수들이 앞가슴에 'UNICEF'라고 크게 새긴 유니폼을 입고 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더 알고 보니 결과는 '역시' 였습니다. 그 변절을 통해서는 광고료 수입을 올리는 게 아니라, 거꾸로 매년 24억 원 가량을 유니세프에 주게 됐다고 했습니다. 지난 60년간 세계의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 온 유엔아동기금에 말입니다. 바르셀로나가 일개 축구팀을 넘어, 극우 파쇼를 분쇄하려 나섰던 스페인 氣槪(기개)의 상징이 된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구나 싶었습니다. 10만 명의 팬들이 그 유니폼의 '순결' 지키기에 동참하겠다며 후원금을 내는 이유도 그제사 이해될 듯했습니다.

얼마 전 알려졌던 '하늘에서 온 편지'는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75세로 숨진 한 영세민 할머니가 남긴 것이었다지요. 그 편지를 통해 할머니는, 이승의 어려움을 한참은 더 견뎌내야 할 또 다른 영세민들을 위해 만 원권 100매를 선물했습니다. 나라로부터 한 달에 40만 원씩을 지원받아 살던 할머니입니다. 방세 15만 원과 약값을 치르면 남는 게 없을 터였지만 그랬습니다. 도움 준 사회를 그냥 떠날 수 없었던 天眞心(천진심)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의지돼 줬던 동사무소 사회복지사에게도 700장짜리 우표책을 남겼습니다. 1963년도 消印(소인)으로 미뤄 40여 년 마음 붙여 모은 결과물일 듯했습니다. 그리고 썼습니다. "아가씨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잊지 않을게, 다음 생에 만나면 보답할게." 가슴이 찡해지지 않습니까? 혹시 이 글투가 어디서 본 적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그건 아마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책에서 인디언 할아버지'할머니가 어린 손자 '작은 나무'를 두고 이승을 떠나며 남긴 그것들일 듯 싶습니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모든 일이 잘 될 거다. 할머니가" "작은 나무야, 이번 삶도 나쁘지 않았어. 다음번은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그쯤이면 이미,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주거나 받거나 하는 세속의 경계를 뛰어넘은 경지에 들어선 것 아닐까 싶습니다. FC바르셀로나 역시 주는 것을 통해 가을 날씨 같은 청명함을 얻고, 영세민 할머니는 초월의 감동을 통해 받는 일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듯합니다.

바르셀로나를 본뜨려는지, 국내 구세군도 80년 가까이 지켜오던 전통을 바꿨다고 합니다. 전에는 매년 섣달 중에 자선냄비를 가동했으나, 올해는 9월에도 나눔의 종을 울리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한가위야말로 힘든 이웃을 생각할 때라는 한 백화점의 제안에 공감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줌으로써 받을 수 있는 추석이 된다면 더 추석다우리라 싶습니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kore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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