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세계적 서양화가 곽훈 화백

입력 2006-09-22 07:22:14

"원래 화가라는 것이 살아서는 고향에서 천대받게 마련이다."

세계적인 서양화가 곽훈(65) 화백이 2004년 시공갤러리 전시 이후 2년 만에 다시 고향 대구를 찾았다. 10월 29일까지 대구시 북구 태전동 대구보건대학 내 대구아트센터(053-320-1800)에서는 '곽훈 초대전'이 계속된다. 서울대 미대 졸업 후 30여 년간 미국화단에서 활동해 온 곽 화백은 최근 경기도 이천에 작업실을 마련해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20일 오후 4시, 2시간 뒤 열릴 개막식을 앞두고 '작가와의 만남'이 열렸다. 곽 화백은 지인과 지역 문화계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지역에서 자신을 잘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대해 뼈있는 농담을 던진 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향'에서 여는 전시회라 그런지 곽 화백은 작품 설명하는 내내 활기를 잃지 않았다. "한국 작가들은 드로잉 전시를 잘하지 않는 것 같다."며 "드로잉은 곧 작품의 밑그림이다. 이를 보면 작가의 창작의도를 알 수 있다." 곽 화백이 설명하는 동안 자리에 앉은 내빈들은 힘에 찬 곽 화백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나를 '기(氣)의 작가'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곽 화백의 작품 속에서 보이는 '생명에 대한 관심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묻는 관람객의 질문에 곽 화백이 처음 던진 말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나는 단지 이를 내 나름대로 표현했을 뿐인데 바로 '기의 작가'로 부르더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이 시간의 중요 화제는 고향 땅인 대구 달성에 지으려는 '개인 미술관'에 관한 것이었다. 곽 화백은 이에 대해 설명할 것이 많은 양 꽤 긴 시간 동안 답변했다. 곽 화백은 지난 4월 본지를 통해 '달성군 내에 미술관을 지어 소장 작품을 모두 기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 비해 미술관에 대한 곽 화백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진 것 같았다.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마련이다. 내 사후에 작품을 자식(곽 화백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다.)에게 물려줘 봤자 자식 버리는 것밖에 안될 것"이라는 것이 곽 화백의 생각이다. 자식이 선친의 작품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곽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달성군에 기증하려 한다. "나이 70이 넘으면 추진도 못해볼 일"이라며 "고향 달성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

"아들한테는 말도 안 했다."는 곽 화백은 "아내도 내 얘기를 듣더니 흔쾌히 승낙했다."며 아내의 용단에 고마워하기도 했다. 곽 화백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세계를 무대로 돌아다니며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한 도시에는 반드시 이를 대표하는 미술관이나 문화 명소가 있다."는 곽 화백은 "문화가 없는 도시는 기 빠진 사람과 같다. 대구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도 미술관 건립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곽 화백은 이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고서는 미술관 운영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주변에서 미술관 건립을 도와주고 있는 지인들과의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이다. 곽 화백은 "먼저 나무를 심고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먼저 조성하려 한다. 그리고 자그마한 전시회를 계속하면서 결과적으로 미술관 건립으로 유도하려 한다."고 구상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구시나 달성군청의 협조. 기존의 관 주도형으로 알맹이 없이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는 과시형 사업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 장기 프로젝트로 제대로 된 미술관을 짓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모두가 자랑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 힘들다. 지역민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곽 화백은 역설했다.

곽 화백은 "문화가 없는 도시는 반드시 죽게 돼있다."며 여건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구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지켜봐 주고 지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겁(劫)/소리', '안양루에서 무량수전을 바라보다' 등 설치 작업과 드로잉, 회화 등 8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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