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를 찾아서] 불교 성지⑤-신라불교 초전지마을

입력 2006-09-21 07:15:41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경북 구미시 도개면 신라불교 초전지마을은 미완의 성지이다. 아직 인연을 못 만나서일까? 신라에 불법(佛法)의 씨앗이 최초로 떨어진 '모례(毛禮)의 집'은 역사적인 불교 성지이지만 퇴락한 채 가을 햇살에 잠겨 있다. 이차돈의 순교로 불국토를 이룬 신라에 불교를 영접한 첫 신도이자 해동불교의 첫 가람인 선산 도리사 건립비를 보시한 모례가 살던 부근이 신라불교초전지에 걸맞게 도량화 될 날은 언제쯤일까?

◇ 고 신라 땅의 첫 신도

신라불교 초전지의 주인공은 당연히 고구려에서 신라로 넘어와서 불교를 전한 아도 화상과 토속 신앙에 젖어있던 고신라 땅에서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포교승을 숨겨주어 불법을 홍포할 수 있게 한 신도 '모례'이다. 모례에 대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눌지왕 때에 묵호자(=아도화상)가 신라 일선군(선산) '모례 장자'의 집에 왔는데, '모례 장자'는 집에 굴을 만들어 편히 지내게 했다」고 쓰여 있다. '모례 장자'(毛禮 長者). '장자'는 큰 부자를 일컫는다. 모례는 당시 엄청난 규모(소 천마리 등)로 가축을 치는 부자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던지 불교전파를 위해 내려온 고구려 승 아도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약관도 되지 않은 19세의 젊은 고구려 승려 아도와 선산의 토박이 부자 모례가 맺은 성속(聖俗)의 인연으로 신라 불교는 움트기 시작했다. 아도화상은 낮에는 모례의 집에서 가축치는 일을 돕고, 밤에는 지하 토굴에서 불법을 홍포했다.

◇ 아도의 어머니가 신라로 보내

모례가 아도화상을 통해 불가와 연을 맺은 것은 아도의 어머니 고도령 덕분이었다. 고도령은 그 시절, 이미 372년에 불교를 받아들였던 고구려 여성으로 그곳에 온 중국 사신 아굴마(위나라 사람)와 정을 맺어 아도를 낳았다. 아도는 다섯살에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출가했다. 총명한 아도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다가 16세에 어머니의 말씀을 좇아 아버지의 나라로 떠났다. 중국에서 아버지 아굴마를 만나고, 현창화상(玄彰和尙) 문하에 들어간 아도는 3년간 불도를 더 닦은 뒤 고구려로 되돌아왔다. 고도령은 이번에는 아도를 신라로 보냈다.

"지금부터 3천 달(250 년)이 지나면 신라에 성스런 왕이 나타나 불교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 신라 땅에는 천경림(흥륜사) 삼천기(영흥사) 용궁 남쪽(황룡사) 용궁 북쪽(분황사) 신유림(천왕사) 사천미(영묘사) 등 일곱 군데 큰 가람터가 있다. 너는 그곳으로 가서 불법을 전해라."

◇ 신라 첫 신도, 모례의 도리사 시주

승려가 된 아도를 미지의 나라 신라로 내려와서 인연을 따라 모례를 만났다. 낮에는 가축을 치고, 밤에는 설법하던 아도가 어느날 행선지도 밝히지 않고 떠나면서 모례에게 말했다. "나를 만나려면, 칡순을 따라 오라." 어느 엄동설한에 모례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남기고 떠난 아도화상을 그리워하는데 집에서 칡순이 돋아났다. 그 칡순을 따라가니 과연 아도화상이 거기 있었다. 지금 도리사가 있는 태조산 기슭이었다. 모례를 만난 아도화상은 망태기를 내어놓고 시주를 권했다. 반갑게 승낙한 아도가 집으로 내려와 망태기에 곡식을 부었다. 헌데 이상한 일이었다. 망태기는 2말을 다 넣고, 2섬을 들이부어도 차지 않았다. 그때 모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가진 재산을 다 시주하여 아도화상이 머무는 태조산 기슭에 절을 지으라고 시주했는데, 그게 지금의 도리사다.

◇ 탐욕 버려 신라불교의 기초 놓다

반야경은 '보시란 사(捨)'라고 가르치고 있다. 흔히들 보시란 불사 때 내는 기부금을 떠올리지만 보시의 본래 의미는 불사에 대한 사례(財施)에 한정되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비바람에서도 끄지지 않은 가난한 여인의 빈자일등(貧者一燈)처럼 보시를 하는 그 마음이 더 소중한 것이다. 신라불교 초전지의 주인공 모례의 보시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성서에도 나와있지만 대개 부자들은 재물쌓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일선군의 부자 모례는 재물에 대한 탐욕을 끊고, 가진 재산을 부처님 전에 바치는 보시를 행함으로써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가 불교국가로 거듭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주고도 뽐내지 않고, 받고도 비굴하지 않고, 주고 받은 것에 얽매이지 않은 모례와 아도의 삼륜청정(三輪淸淨)의 정신이 살아있는 신라불교 초전지마을이 성지로 깔끔하게 마무리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msnet.co.kr

사진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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