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수료과정 없이 형식적인 논문으로 미국의 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엉터리 박사 학위'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력위주 풍토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인천경찰청이 이번에 입건한 '엉터리 박사'들은 모두 8명.
실제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교수 2명을 비롯, 전직 대학교수, 서예연구가, 공연기획자, 경영컨설턴트, 무역업자, 영어학원장 등 직업도 다양했다.
공소시효 5년이 지나 경찰 입건은 피했지만 이들과 같은 방법으로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들도 24명(현직 교수 4명, 전직 교수 4명, 전직공무원, 법무사 각각 1명, 사업 7명, 기타 7명)이나 됐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면 보통 2∼3년은 걸리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이지만 이들은 200만∼1천만원의 학위 취득비용을 내고 인터넷을 통해 퀴즈 수준의 형식적인 텍스트 강의를 수강하며 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한 뒤 다른 논문들을 짜깁기한 논문으로 불과 3개월만에 학위를 취득했다.
이들 대부분은 학위를 내준 미국의 대학에 직접 방문한 사례도 거의 없을 뿐더러 논문 작성 역시 논문대행업체 또는 학교를 소개해준 브로커에게 의뢰, 논문 제목을 영어로 쓰지도 못하고 논문내용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교수들은 석사 학위만으로는 대학 교수로 임용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나머지 인물들은 장래에 강단에 서기 위해 또는 자기 과시용으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식적인 논문으로 받은 박사 학위였지만 수려한 필기체 문장으로 적힌 영문 박사 학위증은 국내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실례로 이모(45)씨는 이 대학에서 취득한 공학박사 학위를 이용, 2003년 3월 한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기도 했다.
또다른 교수는 경찰진술에서 "재직 중인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 심사에 참여해야 하는데 박사 학위도 없으면 곤란해서 급하게 미국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며 "미국 대학의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고 하면 모두 실력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로 의심 같은 것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미국대학 인증기관인 CHEA(Council for Higher Education Accreditation)에 등록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이 대학을 일정금액에 학위를 판매하는 '학위남발 가공대학(Diploma Mill)'으로 규정하고 있었지만 학위 취득만을 중시한 엉터리 박사들에게는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로부터 학위취득 신고를 접수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은 지난 3월 '현직 음대교수 러시아 가짜 박사학위 취득사건'이 큰 사회문제로 비화하자 5월부터 학위신고 내용을 상세화하는 등 신고절차를 크게 개선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박힌 학력위주 풍토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또다른 가짜 학위 사건의 추가 발생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이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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