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명박과 낙동강 대운하

입력 2006-09-15 09:11:08

필자는 지난달말 대구를 찾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정치부장이 인터뷰 약속을 해놓았다기에 담당 분야가 아니었지만 염치 불구하고 따라 나섰다.

그가 대선 카드로 앞세우는 '낙동강 대운하론'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1996년에 이어 현재 연재중인 '생명르포 낙동강'까지 10년 넘게 낙동강 생태계를 취재해온 필자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소문대로 그는 확신에 찬 정치인이었다. 2시간 가까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17년간의 기자 생활동안 여러명의 대통령 후보를 만났지만 그 처럼 전혀 얼버무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대답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수사를 즐겨 썼고 노무현 대통령은 논리와 원칙을 앞세우는 말투가 기억에 남아있다.) 품격 측면에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겠지만 소신만은 만점 가까운 점수를 줘도 될 듯 했다.

낙동강 대운하 얘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민소득 3, 4만달러 시대로 진입하려면 대역사가 필요하고 대구·경북이 살길은 대운하 밖에 없다고 했다. 고용창출, 국토균형 발전, 내수 진작, 레저산업 구축 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줄줄이 내놓았다. 갈수록 경제가 위축돼가는 대구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쉽게 빨려들어갈 만한 내용들이었다.

그는 환경단체 반발에 대해서도 "그들이 친환경적인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기꺼이 협력할 것이다. 이제까지 용수(用水)와 치수(治水)를 제대로 한 적이 있느냐."고도 했다.

그의 확신 앞에서는 '강 모래를 없애면 정수 기능이 없어진다.' '낙동강은 식수로 사용되기 때문에 개발이 어렵다'는 따위의 생태계의 논리는 전혀 먹혀들지 않을 듯 했다.

사실 낙동강 대운하론을 구상한 것은 그가 아니다. 지난 1995년 세종대 부설 세종연구원이 발표한 '신 국토개조전략'이라는 프로젝트에 처음 등장했다. 충주호에서 조령터널을 관통하는 20.5km의 터널을 뚫어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 물류통로로 길이 500.5km의 운하를 건설하는 계획이다.

1년뒤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에서 운하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일부 언론에서 떠들어댔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여론에 떠밀려 유야무야됐다.

그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요즘 낙동강 대운하는 이 전시장에 의해 핫이슈로 되살아났다. 다른 대권후보가 화두로 던졌다면 그냥 넘길 수 있겠지만 청계천 복원 등 화려한 업적을 앞세운 이 전시장이다 보니 상당한 무게감이 실려있다.

그가 자신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 젊은 시절 '리틀 박(정희)'이라고 불리었다면서 매사에 박 전대통령과 자신을 은연중에 결부시키고 있을 정도로 강한 추진력을 주무기로 삼는 정치인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강 모래를 퍼내고 콘크리트로 도배를 한다면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류승원 영남자연생태보존회 회장은 공식석상에서 이 전시장을 '터무니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한 학자는 "낙동강을 파헤치면 이를 소재로 작품활동을 해온 문인·화가같은 예술가들이 가만 있겠는가. 이 전시장은 결국 낙동강 대운하 때문에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 전시장과 환경단체가 본격적으로 힘겨루기를 한다면 주변 여건은 환경단체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을 듯 하다. 노무현 정권을 거쳐온 국민들로서는 '진보(進步) 피로증'에 젖어있고 환경운동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갈수록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해지는 요즘, 환경보호 구호가 얼마만큼 먹혀들지도 궁금해진다. 그가 아직까지는 공식적인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는 점이 환경운동가들에게는 적잖은 위안이 될 것 같다.

어쨌든 그를 보면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것은 필자만의 마음은 아닌 듯 하다.

박병선 기획탐사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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