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비타민] 전관예우인가, 전관수임인가

입력 2006-09-08 09:15:45

민주노동당 노회찬 국회의원이 최근 3년간 지방법원별 구속사건 수임 순위 10위 안에 든 개인변호사의 70% 가량이 판·검사를 지낸 전관 출신이라는 보도자료를 낸 이번 주 대구지법을 비롯한 전국 법원과 검찰은 크게 술렁였다.

그 이면에는 상당히 억울하다는 반응이 내포돼 있었다. 사건 수임과 판결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 의뢰인들이야 막연한 기대감으로 전관을 찾겠지만 판결은 전적으로 법률적 관점에서만 판단하지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항변이다.

전관들의 사건 수임이 많다는 것은 판·검사들도 거의 수긍한다.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거나 법정에 서게 되면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믿고 있다.

문제는 유능한 변호사에 대한 판단 기준. 전관예우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유능한 변호사란 변론을 잘 해서 의뢰인에게 유리한 결정이나 판결을 받아내는 변호사보다는 담당 검사나 판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변호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훨씬 비싼 수임료에도 불구하고 현직을 떠난 지 오래되지 않은 변호사를 찾고 있다. 특히 선거법 위반 사범 등은 생사가 걸려 있는 문제라는 인식 때문에 전관을 찾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했다.

법조를 담당하는 기자들에게도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달라고 요구하는 지인들 가운데 대부분은 전관의 명단을 알려달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법조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은 누가 가장 최근에 개업했는가 정도라도 알아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할 정도로 전관예우는 국민들에게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법조 내부를 들여다 보면 전관이 수임한 사건이라고 의뢰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난다고 보기는 사실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씨는 법률대리인으로 판사 출신인 ㅇ 변호사를 선임했다. 전관을 내세우면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했던게 사실. 그러나 ㄱ 씨 형량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법조계에선 예상보다 더 엄중한 처벌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선거법 위반 사범을 엄단한다는 법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전관예우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

지난 6일 상습 음주운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김모 씨의 변호인도 전관 출신이었다.

한 중견 법관은 "사건이 많아서 의뢰인에게 충실한 변론을 하지 못하는 변호사보다는 한 의뢰인에게 집중하는 변호사가 제출한 변론서에 훨씬 더 마음이 쏠린다."면서 "전관예우를 하는 재판장은 없다고 보고 변호인을 선임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고 말했다.

법원은 다음 달 국정감사에서 전관예우 문제가 집중 제기될 것에 대비해 전관예우와 전관수임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어 국민들의 법감정이 달라질지 주목된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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