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나의 삶, 김연철] ⑥평정직립(平正直立)

입력 2006-09-04 08:55:22

1976년 10월 28일 안동댐 준공식에 임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안동에서 도산 서원까지의 도로를 확장 포장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이성조(李聖祚) 경북 교육감은 도산서원까지의 포장길이 준공되기 전에 학생들에게 먼저 퇴계 선생의 사상과 학문을 지도할 수 있도록 '지도 지침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안동교육청에 의뢰해 왔다.

안동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던 나는 이 일을 맡게 되었다. 관내 유능한 교감들로 제작진을 구성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선행 연구를 한 향토 학자, 해당 분야를 전공한 교수, 심지어 선생의 후손들에게까지 부탁을 해보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퇴계 선생의 학문과 사상이 워낙 심오한데다 짧은 시간 안에 지침서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선생에 관한 서적을 발간한 출판사의 양해를 얻어 필요한 부분을 전재하고, 생애와 인간상, 서당 등은 자체 연구로 감히 조그마한 책 한 권을 내놓게 되었다. 교육장은 여기에 욕심을 보태어 이성조 교육감의 휘호를 받아 게재하라고 한다. 대구로 내려가서 교육감님께 원고를 보여드리니 "아! 도산서원까지의 도로 포장보다 지도지침서가 먼저 준공되는구나."하시면서 '平正直立(평정직립)'이란 휘호를 내려주신다.

안동으로 와서 제작진들과 함께 이 휘호의 출처와 뜻을 알아보려 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모여 논의했으나 출처를 찾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안동의 향토 학자이며 퇴계 선생의 후손이신 이종호 선생님, 그리고 안동교대 교수님에게도 물었으나 모두 모른다고 한다. 부득이 편집위원들이 퇴계전집을 서로 나누어 책임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유치하고 초보적인 방법이기도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도표를 검색해 보고 그래도 없으면 부득불 휘호를 쓴 교육감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이튿날 편집위원 한 사람이 교육청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오면서 "장학사님! 찾았습니다. 찾았어요!" 소리친다. 출처는 퇴계 사상의 결정체인 '천명신도설〔天命(新)圖說〕'에, 그것도 아주 작은 글씨로 평정직립이라 적혀 있지 않은가. 사람의 성(性)은 순(順)하여 거슬리지 않고 평(平)하여 넘어지지 않으므로 천지의 수자(秀子)가 되어 머리는 하늘과 같이 발은 땅과 같이(頭圓足方) 똑바로 곧게 서야 한다는 사람의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조 교육감은 성리학을 많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주역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를 하신 석학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상징인 태극기에 대한 관심은 대단해서 태극, 4괘, 국기봉까지 주역과 관련 지웠고, 우리의 역사(무궁화씨, 곡옥, 감은사 태극 문양)와 깊게 관련 지웠다. 태극기와 국기봉에 대해서는 기하학적으로 분석하여 여러 측면에서 단면을 아름답게 표현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그는 직원을 잘못 만나 교사 자격증 부정 발급 사건으로 중도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때 교육행정은 지나치게 관료적인 측면은 있었으나 뚜렷한 국가관으로 일관되어 그래도 지나고 보면 큰 보람을 느꼈고, 공무원으로서 정성을 다했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김연철 전 대구광역시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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