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뇌병변 아기 돌보는 김소현 씨

입력 2006-08-30 09:03:10

서서히 가을 문턱에 들어서고 있지만 김소현(가명·24·여·서구 비산동) 씨가 머물고 있는 2평 남짓한 방 안은 아직 덥다. 얻어온 선풍기 하나로 더위를 쫓기는 역부족. 부근에 기찻길이 지나고 있는 탓에 간간이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김 씨는 품에 안겨 자고 있는 한 살배기 딸(박주경·가명)에게 미안하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주경이는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아. 아홉 달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기도가 좁고 턱도 뒤로 밀려나 있었던 탓이다. 우유를 삼키면 기도를 통해 폐로 들어가 버려 위 속까지 튜브를 꽂고 흘려 넣어줘야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도 더뎠다. 태어난 지 17개 월이 지났지만 이제 겨우 몸을 뒤집을 수 있을 뿐이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반을 보냈고 이후에도 계속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어요. 병원 출입 외에는 아직 밖에 데리고 나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제대로 먹질 못해 이제 겨우 몸무게가 6㎏ 정도에요. 평범한 아이들 4, 5개 월 수준밖에 안돼 걱정입니다."

김 씨는 지난 7월 남편과 이혼한 뒤 주현(가명·2)이와 주경이 두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 남편과 시댁에 더 이상 정을 붙일 수 없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남편은 첫 딸을 낳은 뒤 아이를 돌본다며 직장에 한 달 휴가를 냈었다. 그 때문에 직장과 마찰을 빚고 사표를 낸 뒤 다시 일을 하러 나가지 않았다. 때문에 농사일을 하는 김 씨 친정 부모가 생활비를 보내줘 생계를 꾸려야 했다.

더욱 김 씨의 속을 태운 것은 시부모가 주경이를 외면한 점. 아예 아이 얼굴을 보려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동복지시설에 주경이를 보내라는 말은 김 씨를 더욱 서럽게 했다. 남편이 일자리를 구할 생각을 않자 김 씨는 자신이 일감을 찾겠다고 했지만 시댁에선 아이를 돌봐줄 수 없다며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결국 김 씨는 마지막 선택을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시댁을 떠났다.

"당장 두 아이와 살 곳부터 구해야했어요. 다행히 주경이의 장애인 등록 때문에 알게 된 이웃 아주머니가 빈 방을 하나 내주셨습니다. 월세 10만 원을 주고 다섯 달을 머물기로 했죠. 아주머닌 '젊은 색시의 형편이 딱하다'며 보증금도 받지 않으셨어요. 정말 고마운 분입니다." 방은 작고 얻어온 살림살이 뿐인데다 돈도 없지만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주현이는 제법 의젓하다. 음식점 전단지를 주워와 먹고 싶다고 했다가도 "참, 엄마 돈 없지. 안 먹어도 돼."라고 한다. 물을 먹다가 흘려도 혼자 걸레를 찾아 들고 닦는다. 엄마 품도 주경이에게 양보하고 멀찍이 떨어져 잔다. 주경이가 입을 통해 삽입된 튜브를 뺄라치면 옆에서 손사래를 치며 말린다. 김 씨는 그런 큰 딸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한참 어리광을 부릴 나인데….

얼마 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됐지만 생활비며, 병원비는 여전히 걱정거리다. 다음달부터 받게 될 보조금은 30만 원. 주경이의 물리치료, 폐의 상태 점검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병원에 들르면 남는 돈은 10만 원 남짓. 주경이를 돌보느라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도 없다. 조금씩 도움을 주는 남동생(23)이 돈을 모아 함께 슈퍼마켓을 운영하자고 했지만 그것도 아직 먼 훗날의 일일 뿐.

"병원에선 주경이가 말문이 트이는 9살이 될 때까진 계속 옆에 있어줘야 된대요. 생활비도 벌어야 되는데 눈앞이 막막하네요. 하지만 실망만 하고 있진 않을래요. 아이들이 제 옆에 있으니까 저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어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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