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위인전이나 인물 이야기가 새롭게 부각된다는 얘기를 듣고 서점을 찾았다. 과연 여러 출판사에서 많은 책들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위인의 지난 삶에 대한 서술이 달라질 게 없어서인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그저 표지나 제본이 고급스러워졌다는 것 뿐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다를 게 없었다.
위인전을 어린 시절 한번쯤 읽어야 할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한다면 책을 만드는 이나 사는 이나 그다지 마음 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위인전이 꿈을 키우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의 어려움과 그 뒤에 오는 기쁨을 깨닫게 하고, 그리하여 한 사람의 삶이 일찌감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실망스런 일이다. 요즘 어린이들의 성장 환경이나 달라진 감수성, 세상의 변화와 이를 보는 인식 등을 반영해 새롭게 쓴 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 참으로 걱정스런 일이다.
지난 책을 꽂아두는 서가들을 뒤지다 발견한 간송 선생의 일대기는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씁쓸함을 풀어주는 책이었다. 꼭 1년 전에 1판이 발행돼 지난 5월에야 2쇄를 했다는 게 아쉽기까지 했다.
간송 전형필.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전 재산을 바치고 평생의 삶까지 보탰다고 하지만, 이 방면에 문외한인 기자에겐 생소한 이름이었다. 머리말을 읽고 부끄러워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1장부터 흥미진진했다.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쯤 되는 장면을 도입부에 둔 것부터 여느 위인전의 형태와는 차이가 났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한 일본인 은행장 수장품 경매장에서 간송 선생이 일본인에게 넘어갈 뻔한 유물을 사들이는 스토리였다. 그렇게 국내에 남게 된 것이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이라는 긴 이름의 국보 294호.
뒤를 이어 자연스럽게 간송 선생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 생을 바친 이유와 과정이 한 장면 한 장면 자세히 소개됐다.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6.25 전쟁이라는 최악의 혼란 속에서 보이는 문화유산에 대한 그의 애정은 보통 사람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서가 사이에서 짧게 읽었지만 드는 생각은 길었다. '요즘 어린이들에겐 이런 책, 이런 위인이 더 가슴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까. 강감찬, 장영실, 이순신도 좋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닮고 싶은 삶을 찾기 위한 거라면 이런 책이 더 쓸모 있지 않을까.'
국사 지식을 넓히기 위해 위인전을 고르는 학부모라면 별 관심을 두지 않아도 좋겠다. 교과서에 나올 만큼 유명한 사람의 일대기를 자녀에게 읽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가 경쟁력이 되는 미래 사회의 양식을 자녀에게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이만한 책은 찾기 힘들다. 읽은 뒤 함께 간송미술관을 찾아갈 수 있다면 마음이 더욱 든든해질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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