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論介(논개)

입력 2006-07-24 11:37:29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 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1924년 시집 '조선의 마음'에 실린, 樹州(수주) 卞榮魯(변영로)의 시 '논개'는 수주의 대부분 작품들이 그러했듯 민족적 색채가 강했다. 壬辰倭亂(임진왜란) 때의 義妓(의기) 論介(논개: ?~1593)의 의로운 죽음을 추모하는 내용이어서 일제가 가만 둘 리 없었다. '조선의 마음'은 출간 직후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조선 宣祖(선조)때 晋州(진주) 官妓(관기)였던 논개는 1592년의 임란으로 진주성이 함락된 후 왜장들이 진주 남강변 矗石樓(촉석루)에서 주연을 열자 술 취한 왜장을 꾀어 바위에 올라 함께 남강에 떨어져 죽었다. 한낱 기생이었지만 風前燈火(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그 붉디 붉은 丹心(단심)은 지금껏 그녀를 靑史(청사)에 길이 빛날 애국혼으로서 추앙받게 하고 있다.

○…논개의 모습은 갸늘갸늘 예쁜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대찬 모습일까. 논개를 흠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그간 진주의 의기사와 장수군의 의암사에 걸려 있던 영정이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이 영정은 친일 논란을 빚은 以堂(이당) 金殷鎬(김은호)의 일명 '미인도 논개'로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시민단체들이 교체를 요구해온 터.

○…논개의 영정 모습이 달라지게 됐다. 진주시와 장수군이 논개의 표준영정을 그릴 작가로 현상공모한 결과 윤여환 충남대 교수가 선정됐다. 윤 교수가 출품한 영정은 이당이 그린, 쪽진 머리에 노랑 저고리, 남색 치마의 논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높이 틀어올린 머리모양에 초록 저고리, 꽃무늬 붉은 치마를 입었다. 당당한 얼굴 표정에 義氣(의기)가 서려있는 듯하다. 논개의 출신 문중인 신안 朱(주)씨 여성의 얼굴 특징을 정밀 분석해 그렸다 하니 실물에 보다 가깝지 않을까 싶다.

○…400여 년 전 여성의 지위가 형편없이 낮았던 그 시대, 더구나 賤妓(천기)의 신분이었음에도 나라의 위태로움 앞에서 결연히 자신을 희생시켰던 논개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번 영정의 새 얼굴을 통해 남강 푸른 물에 강낭콩 붉은 꽃으로 졌던 그녀의 혼도 새롭게 태어날 것만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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