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소학교령 공포

입력 2006-07-18 07:57:04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은 의무사항이다. 모든 국민이 신분이나 배경의 차이에 관계없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 현재 초등교육기관인 '초등학교'의 시작은 1895년 7월 19일 소학교령이 제정되면서였다. 소학교령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의 내정간섭에 따라 일본학제를 본떠 만든 것이었다.

이해 8월 장동·매동·정동·계동·주동에 관립 소학교가 문을 열었다. 학생 수는 20여 명에서 70여 명이었다. 한성사범부속학교는 학생 수가 136명에 달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때까지 서울에는 관립 10개, 지방에는 공립 50개교가 설립됐다고 한다. 그러나 소학교 운영은 쉽지가 않았다.

이전엔 해가 뜨면 학교에 오고 해가 지면 돌아가는 방식의 교육이었던 지라 초반에는 아이들을 제시간에 모으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관리, 통제하기 위해 시간 개념을 가르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정부의 재정 지원도 부족했다.

1906년 보통학교, 1938년 소학교, 1941년 국민학교, 1997년 초등학교로 그 명칭은 숱하게 변했지만, 재정지원이 불충분하다는 점은 여전하다.

▲1374년 이탈리아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사망 ▲2001년 헌재,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방식 위헌 결정.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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