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것 좀 봐. 수박이 계란만 해. 아기 수박인가봐."
예전, 산골 코흘리개들이 뛰놀았을 운동장 한 구석에 모처럼 개구쟁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오랜만에 찾아 온 친구(?)가 반가운 듯 청개구리와 방아깨비도 폴짝폴짝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욕심 부리지말고 먹을 만큼만 따세요." 김태양(26) 보리말체험학교 사무장의 말은 영 효과가 없다. 이경민(11)이는 제 팔뚝만큼이나 굵은 오이를 한아름 따고, 도지현(8·여)이는 상추·고추를 제 욕심대로 챙긴다. 엄마 아빠들도 뒤질세라 열심히 옥수수를 거둬들인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옥수수는 생각보다 키가 크지않다. 겨우 어른 허리 높이. 하지만 자신의 성장 대신 튼튼한 후손을 택한 '본능' 덕분에 씨알은 굵다. 달콤한 주말 낮잠 대신 고사리손을 잡고 '고생길'에 나선 체험객들처럼.
직접 수확한 반찬이라 그럴까. 된장찌게 하나로 모두 두 공기씩 저녁을 먹는다. "글쎄, 아이들이 고추를 별로 좋아하지않는데 다 먹네요."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이 기특하기만 한가보다.
영덕 창수면 인량리 나라골 보리말 체험학교는 올해 문을 열었다. 지난 68년 개교, 50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지난 94년 문을 닫은 인량초교를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체험장으로 탈바꿈시킨 것. 오늘도 신정락(49) 회장을 비롯한 마을부녀회 회원들과 정희인(58·여) 영덕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과장이 나와 도시민을 따스하게 맞아준다.
든든한 저녁을 먹은 뒤 달맞이 산행에 나서는 길. 잔뜩 찌푸리고 있던 하늘이 심술궂게 굵은 빗방울을 뿌려댄다.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아주지!'
아쉽지만 버스로나마 영덕풍력발전단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니 별미 밤참이 기다린다. 숯불에 구워낸 꽁치는 순식간에 뼈만 앙상하게 남는다. 바다와 비와 오징어잡이배의 밝은 불빛에 흥이 올랐을까. 포항에서 온 김현정(34·여), 김복녀(35·여) 씨는 체험학교에 돌아와서도 밤 늦도록 소줏잔을 맞댄다.
다음날은 완전 '수중전'이다. 간밤 잠시 잦아드는 듯 하던 비는 하염없이 쏟아지고 모두 우산을 쓴 채 우중산책에 나섰다. 오늘의 가이드는 이태희(68) 전 영덕군의원. 얼마 전 전기누전으로 자택이 불에 타 경황이 없는 터이지만 모처럼 아이들이 왔다는 소식에 한 걸음에 달려나왔다.
"저희 마을은 충효당·우계종택·오봉헌 등 400~500년을 헤아리는 고택들이 18곳이나 있습니다. 전국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곳은 없지요."
눈이 즐거웠으니 이번에는 손이 즐거울 차례. 체험장에서 박윤식(54) 이장의 '기술 전수'를 받아 여치집 만들기에 도전한다. 보기보다 쉽지않지만 다들 열심히 보릿짚을 베베 꼬아가며 만들다 보니 제법 모양을 갖춘다. 저 여치집에 여치 한 마리씩 넣어줘야할텐데.....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어촌민속전시관(관장 유국진·45)에 들르자 아이들이 다시 기운을 차린다. 최고 인기는 역시 애니메이션 '대게왕자의 모험'. 항해체험 게임과 가상 대게잡이 체험도 아이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돌아오는 길, 아침부터 설친 탓에 이상민(7)이는 기념품으로 산 '게 어항'을 꼭 안은 채 골아떨어진다. 그래, 대게왕자가 되어 바닷속을 신나게 여행해보렴.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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