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란 인위적이다. 자연스럽게 향유할 때 진정한 그 맛이 우러난다. 그래서 문화를 인간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어떤 집단이나 사회 혹은 제도가 하찮은 이익이나 욕심으로 뭉쳐 일부러 향유하고자 할 때 문화는 어김없이 그 역기능을 내뱉는다. 그로 말미암아 그 집단이나 사회는 예기치 못했던 그 역기능에 곤장 맞기는 다반사다. 요즘같이 순수하고 고유한 문화란 없다며 문화의 잡종성을 떠벌리는 시대에는 문화가 인간적이지 못한 경우도 허다해 문화를 향유하려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한다.
김치냉장고가 우연히 히트 친 것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속 깊이 자리한 우리의 김치문화가 대단한 몫을 하지 않았는가. '지네문화'라는 것도 있다. 지난 5월, 약령시의 한방문화축제 때 만났던 문화다. 제주도에서 왔다는 입심 좋은 지네박사는 산 지네를 솜씨 좋게 고량주 병에다 정확히 네 마리씩 담아 팔았다. 별다른 설명 없어도 사람들은 이미 특효약으로 인식해 버렸다. 그날 가장 짭짤한 수익은 물론 지네박사 몫이었다. 그렇다고 이를 한방문화를 등에 업은 신경제라며 벤치마킹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엄청난 수익을 올렸는데도 말이다.
경제의 바탕에는 늘 문화가 있었다. 막대한 힘이라고 했다. 속 깊은 김치문화 이상의 깊은 속이 함축된 논리다. 그런데도 대구경제는 좀체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죽은 경제 때문에 대구를 문화도시에서 제외시켜야 할까. 그럴 수도 없다. 대충 살펴보자.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아직 반반한 미술관 하나 없는 도시. 한때 흥청거렸던 봉산문화거리는 2층 아파트에 가려 점점 침침해져 가고 있다. 대박을 노리는 눈 퀭한 골동상만 분주하다. 국내 사진의 메카 구실을 했지만 지금은 그 흔적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국악에서는 내로라하는 명창들이 숱하게 배출됐지만 대부분 잊혀 갔다. 화려하게 탄생했던 그 많은 미스코리아는 다들 어디로 갔나. 요즘 상종가를 누리며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탤런트 한채영이 대구 출신이지만 이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눈에 띄는 것이라면 최근 들어 하루가 멀다 않고 열렸던 라이브 콘서트나 대형 뮤지컬 혹은 오페라. 그것도 실은 잔잔하게 들여다보면 질보다는 양에 너무 높이를 맞춘 인상이어서 내키지 않을 때가 많다. 대구가 만만찮은 값을 지닌 이만한 양의 라이브 콘서트나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소화할 수 있는 밥통을 가졌다는 것은 아무튼 대단하다. 누구 하나 그 밥통의 소화력을 진정으로 재 본 사람 있을까.
몰리에르가 '부르주아 귀족'에서 적나라하게 지적했듯이 혹 신흥 상류 중산층의 소비적이고 과시적이며 신분 상승용은 아니었던가 하고 한 번쯤 살폈어야 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문화 인식으로 경제의 바탕을 삼겠다면 그것은 헛 욕심이요, 되레 심각한 사회적 병폐일 뿐이다. 사회적 욕망이 못된 문화적 출구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꼭 라이브 콘서트나 뮤지컬이라서 하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다른 문화적 만남에서도 얼마든지 이만한 의심거리는 지천이다.
동성로에 가 보면 느낄 수 있다. 어느 교수가 지적했듯이 젊은이들이 넘치는 그곳에는 '뜨내기 문화' '흘러가는 문화'가 피부를 콕콕 쑤셔댄다. 이런 문화들이 '섞임의 문화' '창조의 문화'로 바뀌어야 지역 발전에 따른 세계화까지 넘볼 수 있다. 여기서의 세계화는 단순히 국가 대 국가의 경쟁 개념이 아니라 도시 대 도시의 경쟁이다. 대구와 필사적으로 벌여야 하는 경쟁 도시를 하나씩 택해야 하고 어김없이 그 도시들을 이겨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살고 문화가 산다. 젊은이들도 산다.
평생을 예리한 풍자와 신랄한 야유로 살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고 금력과 권력에 아부하지 않은 조선시대 시인 정수동(鄭壽銅) 그가 하루는 여러 재상들과 세상의 두렵고 무서운 물건을 이야기했다. 재상들은 저마다 "호랑이가 무섭다" "도적이 무섭다" "양반이 무섭다" 했지만 그는 "호랑이를 탄 양반도적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혹 문화라는 호랑이를 비문화적인 양반도적이 타고 문화도시 대구를 질주할까봐 인용해 본 일화다. 차라리 글 제목의 '비(非)문화'와 '들' 사이에 사람 인(人)자를 넣어 버릴걸.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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