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시평] 아시아의 문화 전쟁

입력 2006-07-05 09:34:53

제가 살고 있는 히로시마 시는 대구 시와 자매결연의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매 년 5월 이 곳에서 열리는 "꽃의 축제"에 대구시도 참가해서 전통 먹거리와 기념품 판매로 히로시마 시민들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대구관 벽에 붙은 한류스타들의 사진들을 보며 그들이 누군지를 묻는 일본 사람들은 없습니다. 일요일 밤마다 NHK 방송에서는 "대장금"이 호평 속에 재방송되고 있고 새로운 한국식당들이 거의 날마다 생긴다고 느낄 정도로 한류의 열풍은 거셉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거센 한류(韓流)의 열풍만큼 그 역풍도 만만치 않습니다. 야마노 샤린의 만화 는 베스트셀러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을 대통령과 영부인까지도 쌍꺼풀 수술을 받는 "성형공화국"으로 묘사하고 또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자세"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만화 는 작년 말까지 약 삼십 오만 부가 넘게 팔렸으며 같은 제목의 잡지들도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라 간의 문제들이 '문화의 장'에서 활발히 표출되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제는 문화전쟁의 시대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솁 나이는 한 국가의 문화, 전통 등의 분야를 아우르는 소프트 파워가 국방, 안보 등을 포함하는 하드 파워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역설한 바가 있습니다. 아시아 삼국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변하면서 한국, 중국, 일본은 문화의 장에서 '부드러운 힘'의 대결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만큼 조직적이지는 않으나 중국의 급격한 국력신장에 발맞추어 중국어열풍은 세계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생기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들은 모국어를 전파시키는데 중추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했던 수 백 명의 젊은 기술자들 중에 약 삼분의 일 정도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공공외교실패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소련과 대립하던 냉전시기동안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은 민간외교분야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이 입증되었다고 판단하면서 미국 정부는 공공외교를 관할하던 독립적인 정부기관을 없애버렸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 한국에서도 서울, 대구, 광주, 부산에 있던 미국문화원들이 1998년에 다 폐쇄되었습니다. 2001년에 발생한 911테러 사건은 이런 미국의 자만심에 경종을 울린 사건입니다.

한국도 지금의 한류열풍에 자만하지 말고 염한류의 역풍과 아시아 삼국이 벌이고 있는 문화전쟁에 대비한 전략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한국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적인 장르의 개발입니다.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세계시장을 석권한 이유는 일본적인 심미감에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접목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 이미 뜨거운 아시아의 한류를 세계의 한류로 바꾸려면 고진감래나 권선징악 등의 동양적인 스토리 전개보다는 세계인들이 공유하는 정서에 어필할 수 있는 감성상품 개발이 시급합니다. 또한 민간과 정부사이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영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유는 제작자들과 감독들의 열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화상품개발에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또 민간부분은 개발한 상품을 정부 전략적 차원에서 수출할 수 있는 상호지원시스템의 원활한 운영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표적 국가이미지 의 개발입니다. 한국하면 머리에 전등불이 켜지듯 떠오르는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일본의 경우 이미 "카와이(귀여운)"라는 이미지를 세계화시켰습니다. "카와이"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을 하지 않은 채 고유한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세계에 우리 민족은 더 이상 '한의 민족'이 아니라 '정열의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면 어떨까요? 정열(情熱), 한국인에게 정말 딱 어울리는 이미지라는 생각입니다.

김미경(일본 히로시마 시립대학교 히로시마 평화연구소 전임강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