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볼링장 전투'를 아십니까

입력 2006-06-05 10:46:37

'볼링장 전투'.

6'25 전쟁 전사(戰史)에서 가장 장렬하고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의 별칭이다.

대구 함락을 막아낸 대구의 북쪽 관문 다부동볼링장 전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의 관문을 지켜내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해냈던 베르덩(Verdun) 전투에 비유, '동양의 베르덩 전투'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전술적으로 중요했고 치열했던 전적지요 전승지다.

그해 여름 '8월 15일까지 대구를 함락하라'는 김일성의 군령에 따라 북한 제2군단은 2만 1천500 명의 병력과 670문의 화포, 34대의 전차부대를 앞세워 필사적으로 밀고왔다. 이에 맞섰던 국군은 고작 7천600여 명, 그나마 500여 명은 방아쇠 당기는 법만 갓 배워 내보낸 학도병들이었다. 그럼에도 27일간을 버티며 지켜냈던 다부동 전선은 막바지에 98대의 유엔군 B-29 폭격기가 960t의 폭탄을 단 26분 만에 다 쏟아부었을 만큼 치열했던 격전지였다.

남침 후 최초로 미군의 탱크가 투입, 북한 탱크와의 첫 전차전이 맞붙었던 곳도 이곳 다부동 전선이었다. 볼링장 전투란 이름도 당시 쌍방간 탱크에서 발사된 둥근 철갑탄 불덩어리가 어둠을 뚫고 적 전차를 향해 계곡을 따라 날아가는 모습이 마치 볼링장의 핀을 향해 미끄러져가는 볼링공 모양을 닮았다 해서 27연대 장병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만큼 전사상자는 어느 전투보다도 많았다. 국군 제1사단이 8월 1~9일 사이 단 9일 동안에 사살한 북한군만도 6천860여 명이었을 정도다.

내일은 현충일, 올 보훈의 달에도 초연이 쓸고간 다부동계곡 등 전적지에서는 50여 년 비바람 긴 세월 동안 몰려 있던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이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수습된 6'25 전사자 유해는 108구. 유품 1천105점과 함께 발굴된 유해 중에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된 완전유해는 12구. 북한군 유해 59구는 북측에 인도됐다. 내일 추념식이 열릴 충혼탑 잔디밭 광장에는 대구지방보훈청과 전몰장병유족회가 호국정신을 기리고 애국심을 다지자는 뜻으로 마련한 나라 사랑 사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항일의 역사, 민주 항쟁, 독도 역사 등 호국 관련 기록 사진 중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진 앞에 서면 절로 옷깃이 여며지는 숙연함을 느끼게 된다. 조각난 유해, 녹슨 유품의 모습에서 볼링장 전투 영령들의 영광과 슬픔이 가슴 아리게 묻어나서다.

과거를 잊고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민족의 미래 역시 준비할 수 없다. 민족의 불행과 위기를 '누구'의 '어떤'희생으로 치유하고 극복했는가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곧 민족의 다음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호국 정신은 바로 그러한 지난날의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잊지 않는 것'이다. 강한 나라일수록 호국정신이 강한 것은 값진 희생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무명용사묘'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전우의 시신을 단 한 구라도 버리고 후퇴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에 애당초 '무명묘지' 라는 게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단 한 명 전우의 시체를 되찾기 위해 소대 병력을 다시 투입하는 전우애와 국가가 호국영령의 희생을 기억해주고 끝까지 뒤를 지켜주는 신뢰에서 국민의 단합과 애국심이 하나로 묶어지는 것이다.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그런 의미에서 전몰장병 유족뿐만이 아니라 이 땅의 젊은 청소년들에게도 생생한 나라 사랑의 교훈과 호국정신 교육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충혼탑 뜰 전시장에 유치원생들이 연일 줄을 서고 노래방들은 자진 휴업하는 모습은 오는 15일 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부가 항일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높이 45m의 거대한 기념탑 준공과 함께 보훈의 달 6월을 새삼 뜻 깊게 하는 것 같다.

현충일, '볼링장 전투'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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