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인류 전체의 절망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 가운데 '25시'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적이요, 수사적인 표현이다. 추상적 관념은 명상이나 형이상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지 모르나 생활 그 자체는 아니다. 생활은 구체적이며 윤리적인 실천에 해당한다. 실천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우리 인간에게 어떤 절망적 상황을 그려주는 말로 '일요일 오후 3시'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생활의 지혜를 찾아봐야겠다.
일요일 오후 3시, - 가장 애매한 시간이다. 새로 일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고 동시에 마무리해 버리기엔 또 너무 이른 시각. 자기의 목적을 향해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에게는 권태가 찾아오지만 마무리해 버릴 수도 없고, 전혀 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겐 시작해 봐야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으며, 시작한다 하더라도 도무지 무엇을 이룩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갖게 되는 아주 기묘한 시각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면 60대 정도에서 느낄 수 있고, 계절로 말하자면 가을을, 대학 시험을 앞둔 3학년 학생들에겐 이 시점 정도를 상징할 수 있는 표현이라 보아진다.
우리는 가끔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는 무엇을 이룩해 놓았는가? 내가 해놓은 것은 진정 가치 있는 것일까 라고 반성하며, 나는 또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한다면 그것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떠올려 보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시각을 사는 지혜를 동양의 한 옛 문구를 빌어서 찾고자 한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 사람으로서의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것. 이 말이 그런 시간을 메우는 좋은 방법이요, 윤리학이라 여겨진다. 지금 목표를 향해 정진하고 있는 사람에게 막바지에서 간혹 찾아드는 회의, 좌절, 불안감 등은 바로 이 한마디로써 씻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며칠 있으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를 치게 된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 앞으로의 결과에 대해 불안해 할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해보지도 않고 좌절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건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노력하는 것, 최선을 다해 보는 것 - 이것이 사람으로써 할 도리가 아닌가 보아진다. 결과는 하늘이 결정해 준다. 왜냐하면 老·莊子의 말대로, 인간이라는 것은 거대한 자연의 한 부분으로 우주 공간에 비하면 극히 작은 부분적 작용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한자(有限者)인 우리 인간은 이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아무 것도 시작해 놓지 않은 사람도 이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머뭇거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없다 할 것이다. 계절이 지난 가을에도 새로 시작하는 농사거리가 있듯이, 예순이 넘은 사람에게도 분명히 뭔가 그에게 적당한 일거리가 있을 것이며 작으나마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는 법이다. 설사 하다가 종말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뿌려놓은 씨앗은 자라서 누구의 손에 의해 계속 가꾸어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버려지더라도 조금은 거둘 것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힘써 노력한 사실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선현들의 지혜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 인간에겐 절망하고 머뭇거리고 애매한 시각을 탓할 일이 없다. 순간순간 준비하며 행하고, 행하면서도 또 준비하는 실천의 윤리학이 있을 따름이다.
전인득(포항제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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