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한잔에 담은 중국의 역사

입력 2006-05-20 10:15:29

강판권 지음/ 지호 펴냄

다반사(茶飯事).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로 풀이되는 이 말은 '늘 있는 예사로운 일'이라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차 마시는 일을 밥 먹는 것만큼이나 자주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다반'이라는 말은 송나라 태종(977) 때 칙명으로 만든 '태평광기(太平廣記)'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이 역대 설화집이고 보면 적어도 송 이전에 이 말이 쓰였고, 송 이전에 '차'를 아주 많이 마셨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차'는 지금도 여전히 즐기는 사람이 많다. 웰빙 열풍이 불면서 최근에는 '차' 애호가들도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차 한잔 하자'는 인사치레처럼, 때로는 굳이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이 말은 대화를 잇는 매개로서 흔히 사용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차'가 우리 생활 속에 얼마만큼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실감케 한다.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등을 펴내며 나무로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읽는데 몰두하고 있는 저자 강판권(계명대 사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차'를 통해 중국의 역사를 엿봤다.

차향(茶香)에 우러나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전공이 중국사인 까닭에 차나무를 통해 바라본 그의 역사관은 독특하다. 마치 차나무의 파릇파릇한 이파리처럼 싱싱하기 그지없다. 저자는 '한 그루 차나무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독자들에게 찻잔 속에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차나무는 곧 중국인의 삶이자 역사다." 책은 중국 고대부터 근대까지 많은 시인, 화가, 승려, 그리고 정치가와 황제들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그들이 맺은 차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차나무의 탄생설화부터 들어보자.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 달마는 명상을 하기만 하면 졸음이 몰려와 아예 눈꺼풀을 베어버렸다. 그 눈꺼풀을 땅에 떨어뜨리자 거기서 싹이 돋아나 차나무가 되었다. 다소 황당하지만 거기에는 적잖은 정보가 들어있다. 차나무의 고향이 달마와 관련돼 있음을 시사한다. 찻잎이 사람의 속눈썹을 빼닮았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남북조시대를 마감하고 중앙집권 체제 확립과 과감한 제도 개혁으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수나라 문제(文帝). 놀랍게도 그 비결은 차에 있었다는 저자의 말은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문제가 황제가 되기 전 어떤 귀신이 나타나 자신의 머릿골을 바꾸는 꿈을 꾸었다. 그 이후부터 심한 두통에 시달렸던 문제에게 어느 날 스님이 나타나 "산중의 차나무 잎을 먹어보라."고 권한다. 문제가 그것을 달여 마셨더니 효험을 얻었다. 이 소식을 들은 천하 사람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했으며 저자는 이 일화를 들어 본격적으로 차 문화의 시작을 수나라 때로 본다.

문자로 확인되는 최초의 차 관련 내용은 이미 주(周)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멸망한 은(殷)나라 유민이 주나라 무왕에게 바친 조공 품목에 차가 등장함으로 미뤄 저자는 차는 이미 은나라 때부터 재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전국시대에는 차 관련 인명·지명이 나타나고 진나라 때는 중국 전역으로 차가 퍼진다. 위진남북조시대 위나라에서 최초의 차시가 태어나고 동진시대에는 중국 최초의 황제 전용 차밭이 등장한다. 차 문화의 전성기였던 당나라는 차를 그림과 시로 읊조리고,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인 '차경(茶經)'도 나온다. 송대에는 차 독점과 전매가 횡행하고 칭기즈칸은 서양으로 차를 전파시킨다. 청나라 순치 황제 때인 1657년 영국 커피점에 차가 등장한다. 중국 역사의 주요 고비에서는 언제나 차가 등장했는데 특히 근대에 와서 중국 대륙은 차 때문에 온통 피멍이 든다. 2차례의 아편전쟁. 중국은 서양 제국주의의 사냥터가 됐고 중요 먹잇감 중 하나가 차가 됐다.

중국 대륙의 역사가 담긴 차 한 잔 권해 보자. 혜능 이후 가장 뛰어난 선승으로 알려진 주조선사도 "차 한잔 들게나(喫茶去)"며 권하지 않았던가. 차를 마시는 일상의 행위가 곧 도(道)임을, 삼라만상이 스승이며 삶 자체가 공부라는 깨우침을 얻게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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