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를 찾아서] 천주교①-관덕정 순교기념관

입력 2006-04-29 07:37:48

"하늘과 땅은 사라질 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원히 남는 단 하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영원히 살 터인데, 들에 핀 풀꽃같이 유한한 이 목숨 아껴 무엇하리."

그렇게 교우들은 하나 둘 스러져갔다. 살만큼 살고 평화롭게 명(命)을 다한 것이 아니라 저승 칼날을 번득이는 휘광이의 손에 끔찍하게 숨져갔다. 결코 두려워하거나 세상미련을 못 버려서 '주춤주춤' 뒤돌아보지 않았다. 순수한 믿음으로 '오로지' 주님을 향해 은총의 피를 거침없이 뿌렸다. 바로 천주교 대구관덕정 순교기념관(대구시 중구 남산동 적십자병원 바로 뒤)에서 불과 200년~15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 평화 속에 깃든 관덕정 비가(悲歌)

지난 91년 대구 남산동 언덕배기에 들어선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 대구대교구 순교기념관 관덕정의 일상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덩그랗게 높은 솟은 한옥 누각을 인 관덕정 순교기념관의 계단은 길쪽으로 다소 급한 듯 다정하게 나있다. 마치 삶에 지치고 인간에 실망한 고단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환영한다는 듯이. 예수님의 12제자 처럼 꼭 12칸인 돌계단을 올라서면 대구대교구 제2주보 이윤일(요한) 성인이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넨다. 이윤일 성인은 1867년 1월21일 경상 감영의 처형장이던 대구 관덕정에서 치명당한 뒤, 형장 부근에 매장됐다가 아들 형제에 의해 날뫼(현 비산동)로 이장되었고 다시 경기도 묵리와 미리내 성지를 거쳐 1991년 1월20일 지하 경당에 봉안됐다. 이처럼 관덕정은 이윤일 성인을 포함한 많은 천주교인들이 믿음을 버리지 않아 처형된 성지이다. 조선 시대 무과 시험의 하나인 도시(都試)를 행하던 관덕정이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가 된 것은 경상도 교우들이 박해를 받아 이곳에서 순교하면서 부터이다. 관덕정에서는 천주교인 뿐 아니라 동학 창시자 최제우도 처형됐다.

◇ 경상도에서 터진 을해박해 피바람

천주교가 공인되기 전, 우리나라에는 여러번의 박해가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경상도에서는 을해박해(1815년) 정해박해(1827년) 병인박해(1866년) 때에 많은 신자들이 희생됐다. 을해박해는 신유박해(1801년) 이후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영양 일월산과 같은 경북 북동부 깊은 산중으로 숨어들어 신자촌을 형성해서 살던 교우들에게 14년 만에 터진 국지적인 박해이다. 1814년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살기 어려워지자 신자촌으로 구걸을 다니던 전지수란 자가 신자촌을 밀고해버렸다. 신자들이 잡혀가면 그 재산을 차지하리라는 욕심에서였다. 밀고를 받은 청송현 포졸들이 을해년(1815년) 부활대축일에 청송 노래산 신자촌을 덮쳤다. 경상도 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노래산 신자들이 잡혀간 며칠 뒤에는 진보 머루산 교우들이, 곧이어 일월산 곧은정과 봉화 우련전 신자들이 붙들려갔다. 모두 71명이었다. 이들은 안동, 경주진영을 거쳐 경상감영으로 끌려갔다. 경상감영은 지금은 아름다운 공원이 됐지만 천주교를 믿다가 끌려온 당시 교우들에게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옥터에 갇힌 교우들에게 1차, 2차 고문이 거듭되면서 최봉한(프란치스코) 김윤덕(아가다 막달레나) 김진성 김악지 신광채 심경 김광억 등이 옥사했다. 끝까지 버틴 13명에게는 사형이 언도됐다.

◇ 박해 통해 대구에 복음의 씨앗 뿌려져

사형을 언도받은 지 일년 뒤인 1816년 10월21일 사형명령이 하달됐고, 그 집행을 기다리는 사이 안치룡 서석봉(안드레아) 김시우(알렉스) 김흥금 김장복 등이 모진 고문 끝에 옥사했다. 드디어 1816년 11월1일 사형집행일. 김종한(안드레아) 고성운(요셉) 고성대(베드로) 김희성(프란치스코) 김화춘(야고보) 구성열(발바라) 이시임(안나) 등이 영원한 생명을 좇아 '하느님의 종'임을 고백하고, 관덕정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정해박해(1827년) 때는 박사의(안드레아) 김사건(안드레아) 이재행 (안드레아), 1836년 박대식(빅토리노), 병인박해 때 이윤일 성인이 은총의 피를 뿌리며 아름답게 산화했다. 밀양의 신석복(마르꼬)와 박대식(빅토리노) 등도 이곳에서 처형됐다. 신비하게 교우들이 박해를 받으며 피를 흘린 자리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윤일, 김종한(김수환 추기경의 종조부) 등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관덕정은 한국천주교 200주년과 103위 성인을 기념하는 성지가 되었고, 바로 옆 계산동에는 대구대교구 주교좌본당이 들어섰다.

◇ 위기에 더 빛을 발하는 역설의 진리

위기가 닥치면 떠날 사람은 언제든 떠나고 배신할 사람은 신이든 인간이든 배신하고야 만다. 그러나 진정한 사람들은 위기 국면에서 오히려 빛과 용기를 발한다. 물질이 최고가치로 여겨지는 요즘 세상사에서 중심을 잡으며 예수님처럼 인간의 슬픔이나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마음이 가난해서 하늘나라를 차지할 사람들이라면 대구 도심에 자리잡고 있어서 쉽게 갈 수 있는 천주교대구대교구 관덕정 순교성지를 찾아볼 일이다. 문득 일상을 접고 조용한 마음으로 관덕정을 찾아 묵상순례하고 신앙의 씨앗을 뿌린 사도(使徒)들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듯 영혼의 때가 말끔히 씻어지는 행복을 맛볼 수 있으리라. 대구지하철1,2호선 환승역인 반월당 역에서 내리거나 동아쇼핑이나 적십자병원 버스정류장에서 내래면 1분 안에 도착한다. 남문시장 쪽에서 내려도 5분 거리이다. 관덕정 순교성지를 제대로 체험하려면 운영위원회(053-254-0151)의 도움을 구하면 된다. 매달 첫째 토요일 후원회원을 위한 미사와 순교영성 강좌가 열리고, 국내외 성지 순례도 가고 있다.

글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msnet.co.kr 사진 정우용 기자 vin@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