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 불신 '확산'
주부 권미향(35·북구 침산동) 씨는 엥겔지수(가계지출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를 다소 높이기로 했다. "과자든 음료수든 믿을 수가 있어야죠. 어디서 무엇을 사든 지 믿고 먹을 게 없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결국 과자도 제과회사 제품보다는 전통과자나 베이커리 과자를 사먹이고, 과일이며 반찬거리 역시 조금 비싸더라도 프리미엄 제품을 사게 됩니다."
얼마 전 대형 소매점에서 전통과자를 산 주부 이인주(32·달서구 죽전동) 씨는 저울에 찍힌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닐 포장지에 3분의 1 정도 담았을 뿐인데 가격은 9천 원을 훌쩍 넘었다. "그냥 아무 과자나 사먹이기는 아무래도 불안하죠. 아토피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데…." 이씨는 이날 소시지나 햄 대신 즉석 돈가스를, 삼겹살 대신 돼지 갈매기살을, 일반 딸기 대신 유기농 딸기를 샀다. 평소 주말 장을 볼 때 7만~8만 원이면 충분했는데, 결국 이날 구매금액은 1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장보기가 겁난다는 주부들이 많아졌다. 장바구니 물가가 올랐다기 보다는 실제 구매단가가 올랐기 때문. '조금 비싸더라도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사 먹겠다는 심리 때문에 가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20~30%씩 높아지고 있다. 고급제품을 찾는 프리미엄 심리로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프리미엄은 일반 제품보다 10~50% 가량 비싸지만 일단 한두번 사번 경험이 있는 고객들은 일반 제품으로 쉽게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유제품에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 백화점 및 대형 소매점 우유 코너에는 30여종이 넘는 다양한 백색우유가 치열한 판촉전을 펼치고 있다. 바나나, 딸기, 초코 등 가공우유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다시 백색우유가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일반 우유와 프리미엄 기능성 우유가 서로 세력 다툼을 벌이는 것. 일단 매장 진열대 선점에선 프리미엄이 판정승. 유통업체들로서는 마진 폭이 큰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소비자들이 많이 찾기 때문으로도 풀이된다. 대표적인 프리미엄 우유로는 소화가 잘 되는 우유, 목장의 신선함이 살아있는 우유, 맛있는 비타 우유, 저지방 우유 등이 있다. 이름만으로도 구매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프리미엄 우유는 1,000㎖ 기준으로 2천~2천600원 가량. 일반 우유가 1천300원 미만인 것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편이다.
커피도 프리미엄 바람을 타고 있다. 커피내 천연 폴리페놀 성분을 보호하는 공법으로 제조된 것들이 인기. 폴리페놀은 세포내 유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물질. 폴리페놀 중 커피의 클로로겐산은 체내 흡수율이 녹차의 폴리페놀 성분인 카데킨보다 3배 가량 높아 각광받고 있다. 일반 제품보다 20% 이상 비싸지만 젊은 층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심지어 캔 참치도 갈수록 고급화하고 있다. 기존 제품은 다랑어와 면실유로 이뤄져 있었는데, 최근엔 100% 황다랑어에 올리브유를 첨가한 제품이 나왔다. 가격은 무려 60% 이상 비싸지만 최근 선호 제품 중 하나로 꼽힌다.
딸기 잼도 고령 안림지역에서 무농약 재배한 딸기를 무방부제, 무색소로 가공한 제품이 많이 팔린다. 기존 대량 생산제품에 비해 판매량은 아직 미미한 수준. 하지만 2배 가량 비싼데도 구매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동아백화점 푸드갤러리 이석종 과장은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과 웰빙 영향으로 프리미엄제품, 유기농제품, 친환경제품 등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또 매출도 늘고 있다."며 "주부와 20~30대 미혼여성 등 경제적인 면에서 꼼꼼한 여성고객들이 오히려 더욱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지갑사정 보다 건강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대구지역의 경우 유난히 고가 및 프리미엄 제품의 판매가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 대구 5개점이 집계한 4월 들어 매출액 추이를 보면 프리미엄 청과, 수입 갈비, 부채살, 돼지 갈매기살, 생선회 등 비교적 고가 상품의 판매가 호조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동일 품목의 전국 판매보다 대구지역이 3~4%포인트 가량 높게 형성된 것.
청과의 경우 4월 들어 오렌지, 바나나 판매가 매출 수위를 지키는 가운데 딸기, 사과, 참외, 수박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신장률을 따져보면 오렌지는 전년 대비 -2% 역신장한데 비해 딸기는 142%, 사과는 180% 급신장했다. 특히 사과의 경우 올해 첫 선을 보인 유기농 사과가 전체 사과 매출의 18%를 차지하고, 감귤 역시 프리미엄급의 구성비가 9%대에 이른다.
전체 소고기 판매는 늘었지만 가격대가 워낙 비싼 국내산 한우 소고기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판매가 조금 줄었지만 수입산은 35% 신장세를 보였다. 특히 갈비살, 부채살 등 고급 구이용 부위에 대한 고객 반응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고기 역시 삼겹살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지만 판매비율은 3% 가량 줄었다. 반면 비교적 비싼 갈매기살은 334% 신장했다.
하지만 가계 부담이 큰 주부들로서는 이같은 프리미엄 제품이 반갑지만은 않다. 주부 최은수(32·수성구 범물동) 씨는 "매년 물가 상승폭만 감안해도 가계 부담이 큰데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 때문에 프리미엄 제품을 사야하는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며 "일반 제품과 프리미엄을 구분해 생산한 뒤 가격만 올리는 제조업체 농간에 놀아나는 느낌"이라고 푸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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