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동쪽 바닷가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관어대(觀魚臺)이다. 고기를 바라보는 전망대라는 뜻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고 여기는지 상대산이라고 일컬어 예사 산의 하나가 되었다. 관어대라는 말은 그 아래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쓰인다. 가까이 있는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곳이다.
600년쯤 거슬러 올라가보자. 경이로운 일이 있었다. 거기서 고려 말의 문인 이색(李穡)이 길이 빛나는 명작 '관어대부'(觀魚臺賦)를 지었다. 그때로 되돌아가려면 남긴 작품을 읽어보아야 한다. 원문을 만나야 경이에 동참할 수 있다.
"관어대는 영해부에 있다. 동해가 석벽 아래 노는 고기를 셀 만해서 지은 이름이다. 영해부는 나의 외가이다. 작은 부(賦)를 지어 중원에 전해지기를 바란다."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외가에서 어릴 적부터 본 경치를 그린 작품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한문학의 본고장에서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관어대 마을보다 더 안쪽에 호주말이 있다. 관어대는 괴시2리이고, 호주말은 괴시1리이다. 이색은 호주말 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청도 한산(韓山) 사람인 아버지 이곡(李穀)이 그 마을 수안(遂安) 김씨(金氏) 김택(金澤)의 사위가 되어 처가에 머물렀다. 무가정(無價亭)이라는 정자에서 놀던 기억을 길이 간직하면서, 음이 같은 다른 글자를 사용해 자기 호를 '가정(稼亭)'이라고 했다. 가정은 농사꾼의 정자라는 뜻이다. 이색은 짐승을 기르면서 숨어 지낸다는 목은(牧隱)을 호로 삼았다. 이곡과 이색 부자는 고려와 원 두 나라 수도를 오가면서 벼슬살이를 하면서 줄곧 시골 생활을 그리워했다.
이색은 외가 곳을 잊지 못한다고 여러 시문에서 자주 말했다. 어릴 적에 가깝게 지낸 외사촌 형이 영해에서 와서 상봉한 것이 기뻐 짓는다는 시에서, '향리우유자소년 간과표박재화전(鄕里優遊自少年 干戈漂迫在華顚:고향 마을에서 어려서부터 함께 놀다가, 전란을 만나 떠돌아 다니면서 흰 머리 날리네)이라고 했다. 전란이라는 말은 특정 사건을 두고 한 것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도록 하고 마음을 괴롭힌 제반 사정이 전란과 같다는 뜻이다.
이색이 별난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 집안과 어머니 집안 양쪽을 왕래하면서 성장하고, 부계와 모계를 대등하게 받드는 것이 오랜 관습이어서 오늘날과 달랐다. 고향이 양쪽에 있었다. 이색이 외가 곳을 고향이라고 자랑하고 그리워한 것은 인정의 얽힘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쪽이 정신적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관어대부'가 말해주고 있다. 빼어난 산천이 높은 수준의 깨달음을 가져다준 아주 좋은 본보기가 이 작품이다.
'단양동안 일본서애(丹陽東岸 日本西涯)' 본문이 이렇게 시작된다. 단양은 영해의 옛 이름이다. 자기가 노래하는 대상이 영해 동쪽 일본 서쪽에 있다고 했다. 바다를 건너가면 일본이라는 사실을 다른 작품에서도 말했다. 자기 고장이 "동쪽으로 큰 바다와 맞닿고 일본과 이웃하고 있어 우리 동국의 극동이다."라고 했다. 일본을 이웃이라고까지 말했다.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 것은 아니다. 바다 건너 있는 일본까지 의식하면서 시야를 넓혔다. 서두에서 자기 작품이 "중원에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한 것까지 합치면 세 나라를 다 들었다. 알려진 모든 영역을 생각했다. 눈앞의 바다를 노래하는 작품이 영해 고을에서 더 나아가 나라 전체에서, 다시 온 천하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라고 일러두었다.
다음 대목에서는 '홍도묘묘(洪濤 ■ ) 막지기타(莫知其他) /기동야(其動也) 여산지퇴(如山之■) /기정야(其靜也) 여경지마(如鏡之磨)'라고 했다. 원문을 바로 들었다고 나무라지 말기 바란다. 번역은 실물을 대신하는 사진 같아 실감이 모자란다. 원문을 눈으로 보기만 하고 풀이하는 말을 들으면 된다. "넓게 일어나는 파도"가 움직이는 모습을 "水(수)" 자를 셋 겹친 "■(묘)"자를 거듭 써서 나타냈으니 얼마나 묘한가. "물결이 보노라면 다른 것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움직이면 산이 무너지는 것 같고, 고요하면 거울을 갈아놓은 것 같다."고 했다. 그때 쓰던 청동 거울은 갈아서 깨끗하게 했다.
물결을 조금 더 묘사하다가, 땅이 끝나고 위로는 하늘만, 아래로는 물만 있는 곳에서 고기를 향해 눈을 돌렸다. '부견군어(俯見群魚) 유동유이(有同有異) 어어양양(■■洋洋) 각득기지(各得其志)' '내려다보이는 뭇 고기,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멈칫멈칫 활딱활딱 각기 제 뜻대로라'고 했다. 땅 끝에 이르자 오랜 인습이 사라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린다는 것을 그렇게 말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고기떼를 웬만한 낚시꾼은 잡지 못한다고 했다. 가능성이 있다고 바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다음 대목에서는 '차부아인 만물지령 망오형이락기락 락기락몰오녕(嗟夫我人 萬物之靈 妄吾形而樂其樂 樂其樂歿吾寧)'이라고 했다. 앞의 말은 "아 무릇 우리 사람은 만물의 영이다."이다. 사람은 만물의 정신에 해당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모습을 잊고 만물의 즐거움을 즐기며, 만물의 즐거움을 즐기노라고 우리의 안녕은 모른다."고 했다. '물아일심 고금일리(物我一心 古今一理)'로 말을 이어, 이것이 바로 "물과 내가 한 마음"이라고 하는 경지이고, 그 점에서 "고금이 한 이치이다."고 했다.
물과 내가 한마음임이 고금의 한 이치라는 것은 유학의 가르침이고 군자가 지켜야 할 도리라고 했다. 그 점을 확인하고 공자의 가르침을 받들자고 하지 않고, "공자가 뗏목을 타고 오시면 또한 이것을 즐기시리라"고 했다. 공자가 중국에서는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떼를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의 땅으로 이주하고 싶다고 한 말을 가져와 새 시대를 창조하는 사상을 고려에서 일으킨다고 암시했다.
이색은 '관어대부'를 지으면서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빼어난 경치를 아름답게 그려내려고 작업을 다시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의 기풍을 바꾸어 새로운 사상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세계 인식의 중심으로 삼은 경치에서 천지만물의 이치를 발견했다. 문인이 할 일이 명문을 쓰는 것만이 아니고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더욱 긴요한 과업임을 알렸다.
작품을 다시 읽고 무엇을 깨우쳐주는지 정리해보자. 멀리까지 나다니다가 다시 보면, 가까운 데 진리가 있다. 자기가 나고 자라고 잘 아는 곳이 천하의 중심이다. 천하의 중심에서 새 시대를 열어나간다. 진실은 책이 아닌 실제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사물의 생생한 움직임을 체득하는 것이 도리 각성의 길이다. 바다에서 뛰노는 물결이 우리의 정신이고 기백이 아닌가.
이색은 원나라에서 천하대세를 크게 보고 새 시대의 이념으로 등장하는 성리학을 공부하고 돌아왔다고 알려졌으나, 수입학을 능사로 삼지 않고 창조학을 이룩하고자 했다. 추구해야 할 이치가 가까운 데 있다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주위 사람들이 사는 형편을 살피고, 풍속을 노래하고, 역사를 회고했다.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대상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문학으로, 물아일체이고 고금불변의 원리를 구현했다.
이색의 사상은 정도전, 권근 등의 후계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원리가 되었다. 자기 자신은 체계적인 사고를 끝까지 밀고 나가거나 강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올바르게 살아가는 자세를 자기대로 추구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정계에서 물러나 자연에 묻히고자 하는 심정을 여러 작품에서 나타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처하기에는 시대 변화가 너무나도 급박하고 거셌다.
실천에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고, 사상에서는 후진이 앞섰으나, 문학에서 이룬 바는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김종직은 관어대에 가서 '관어대부'를 다시 지었다. 자기도 그 경치를 보면서 천지만물의 이치를 깨닫는다 하고, "목은옹(牧隱翁)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웅대한 사설을 외니 맛 좋은 음식으로 실컷 배를 불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내력을 잊은 후대인은 가서 경치나 보고 대단치는 않다고 한다.
이색이 떠나고 한참 뒤에 호주말 마을은 주인이 바뀌었다. 수안 김씨네는 떠나고, 영양 남씨가 들어가 동성마을을 이루고 대대로 살았다. 문화재급 고가가 즐비하고, 전통마을로 지정되어 위세를 자랑한다. 그런데 크게 내세우는 인물은 이색이다. 마을 입구에 '가정목은유허비'(稼亭牧隱遺墟碑)가 서 있다. 이색이 태어난 날인 5월 9일 무렵에 영덕군에서 목은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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