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46·여) 씨는 요즘 잠을 이룰 수 없다. 지난 2월 갑자기 쓰러진 남편은 이미 '소생 불가'라는 진단이 내려진 상태인데다 남편의 치료비를 보장해 줄 것이라 기대했던 보험이 박씨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는 것.
보험회사에서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며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
남편 병원비는 700만 원에 이르렀지만 박 씨는 지난 21개월 동안 꼬박꼬박 내온 질병보험으로 큰 걱정을 않았다. 매달 22만 4천 원씩 부어왔던 생명줄이었다.
해당 보험회사는 "질병 보험에 가입할 당시 지병(고혈압)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박 씨에게 원금 490만 원만 지급했다. 박 씨는 "생계 수단인 고물상까지 처분했지만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며 "보험가입 때 회사는 고지의무에 대해 한마디 설명도 해주지 않았는데 못 배운 우리 부부가 결국 질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고지(告知)의무 위반'을 둘러싼 가입자와 보험사간 분쟁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고지 의무는 질병이 있는 사람이 이를 알리지 않은 채 보험에 가입, 고액의 보험금을 받는 것에 대비, 보험사가 만들어놓은 약관.
그러나 이를 모른 채 계약을 체결, 보험료를 빠짐없이 납부하고도 사고가 나거나 병을 앓을 때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8월 갑상선 암에 걸린 뒤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한 나모(43·여) 씨 경우도 마찬가지. 나 씨는 보험에 가입전 갑상선 결절종이란 판정을 받은 경력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가 결국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정모(32) 씨 역시 고교시절 신장 질환으로 입원 치료했던 사실을 오래전 일이라며 밝히지 않았다가 결국 말기 신부전증 판정을 받고도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고지·통지의무 위반으로 접수된 보험분쟁은 모두 840건. 2004년 732건, 2003년 679건 등에 비해 해마다 9~13%가 늘었다.
금융감독원 대구출장소 관계자는 "'고지·통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보험분쟁에서 보험 계약자가 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고지의무를 위반한 계약자의 과실이 우선인데다 법원이 지병과 현재 질병 간에 인과관계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고지의무 위반으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보험 청약서의 질문표를 꼼꼼이 살펴볼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보험설계사에게 구두로 알리는 것으로는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보험회사 한 직원은 "일부 모집인들은 질병이 있어 보험 가입이 어려운 사람에게 '고지의무 위반을 해도 계약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유효하다'며 가입을 종용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라도 막상 분쟁이 생기면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한편 최근 생명보험협회가 발표한 '생명보험 성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가구당 생명보험 가입율이 81.9%로 갈수록 늘고 있다. 5가구 중 4가구가 생명보험을 1개 이상 가입하고 있는 것.
가구당 평균 생명보험 가입건수는 3.6건, 연간 생명보험료 지출액은 평균 293만 원이었으나생명보험 가입시 계약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입한다고 응답한 계약자는 29.9%에 그쳤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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