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돌담길

입력 2006-04-14 11:25:37

'덕수궁'이라는 이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다른 고궁들보다 일반 국민에게 훨씬 친숙하게 다가온다. 도심 속의 고즈넉한 정취야 다 엇비슷하겠지만 유난한 친근감은 다름아닌 그 유명한 돌담길 때문이다. 고궁을 따라 길게 이어진 돌담길은 봄이면 연둣빛 가로수들로, 여름엔 싱그러운 녹음으로, 가을이면 흩날리는 노란 은행잎들로 서울 최고의 데이트 코스다.

○…"밤도 깊은 덕수궁 돌담장 길을~"로 시작되는 1960년대 진송남의 노래 '덕수궁 돌담길'이나 "이제 모두 세월 따라/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있어요~"라는 80년대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는 모두 그 시절의 히트곡이었다. 과거 근처에 가정법원이 있어 이혼 절차를 밟는 부부들이 이 길을 지나야 했기에 "연인과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로도 유명하지만 2000년대의 연인들 역시 이 돌담길을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1960, 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농어촌 어디서나 돌담을 볼 수 있었다. 온갖 크기, 별별 모양의 돌들이 기막힌 조화를 이뤘던 담장. 아낙들은 돌담 너머로 부침개며 호박죽 같은 별미를 건네며 정을 나누었고, 갑돌이'갑순이들은 가슴 두근거리며 돌담 너머도 남몰래 눈빛을 주고받곤 했다. 오랜 세월 풍우를 견디며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품에 안은 돌담이었다.

○…그 흔하던 돌담이 현대화 물결에 밀려 자취조차 찾기 어려워진 요즘이다. 최근들어 이들 사라져가는 돌담길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참 다행이다. 문화재청이 전국 16곳 자연마을의 돌담길에 대해 중요민속자료 등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 도내에는 군위 대율리 부림 홍씨 집성촌, 예천 금당실, 성주 대산리 성산 이씨 집성촌 등 3개 마을이 포함돼 있다.

○…경북도가 이 마을들의 돌담길을 문화유적지와 연결해 관광 코스로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나섰다. 대율리 홍씨 집성촌은 전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돌담길과 아름드리 고목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는 데다 인근에 고찰 인각사와 제2석굴암 등 문화유적들도 풍부하다. 전통가옥들과 긴 돌담길이 어우러진 대산리와 금당실 마을도 타임 머신을 타고 온 듯 고즈넉한 정취에 잠기게 한다. 디지털 시대, 메말라가는 감성에 오래되고 나지막하며 구불구불한 옛 돌담길이 주는 의미가 새삼스럽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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