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를 보면 구구절절 뼈저린 고뇌에서 우러나온 애민관(愛民觀)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하고 이완될 대로 이완된 시대의 말기적 징후 속에서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생개선을 위한 해법을 강구하는 치밀함과 인간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어 그 의미는 더욱 진실합니다.
모름지기 공직자라면 이 같은 목민관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30년째 공직생활을 해온 임용석(56)씨. 본인 뜻에 따라 소속기관과 직함은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그가 퇴근길에 직원들과 가끔 들러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구이 집에서 시골에서 '서리'해 먹던 추억과 옛 먹을거리에 대한 회상을 들어봅니다.
"구이 집은 대구에만 있는 독특한 음식점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임씨는 공직생활 동안 몇몇 도시에서 근무한 적이 있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술과 푸짐한 안주,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은 보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수성구 들안길 음식거리가 요즘처럼 번성하기 전인 90년대 초부터 한달에 한두 번 들르는 '극동구이'는 생고기(뭉티기)와 함께 묵은 열무김치, 번데기, 생고구마, 배추뿌리 등이 찬과 안주로 제공된다.
"일년 내내 나오는 이집의 곰삭은 열무김치는 제가 특히 좋아합니다. 초?중교시절 방과 후 어머니가 고추장 한 숟가락을 떠 넣고 비벼주시던 열무김치 비빔밥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 만큼 자주 먹었던 음식이죠"
먹을거리가 충분하지 못했던 그 때 그 시절 고향 상주에서 임씨가 즐겼던 간식거리도 생고구마와 배추뿌리 그리고 번데기.
"번데기만 보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상주는 당시 잠업을 많이 하던 터라 번데기가 흔했습니다. 솥뚜껑을 뒤집어 볶아 먹던 번데기 맛은 정말 좋았죠" 그러면서 한 접시를 더 주문 한다.
쫄깃한 생고기도 임씨가 즐기는 안주다. 본래 고기는 생것이 소화도 더 잘 되고 영양과 맛이 뛰어나다는 게 임씨의 지론. "기운이 달릴 땐 생고기 한 접시에 소주 서너 잔이면 피로가 풀릴 정도"라며 껄껄 웃었다.
회식 땐 양지머리도 추가한다. 소금에 찍어먹는 양지머리는 감칠맛 나는 고소함이 별미.
구이 집 주인이 직접 만든 청국장도 빼놓지 않는다. 보리밥에 청국장을 쓱쓱 비며 먹으면 그게 바로 어머니 손맛이라는 것이다. 피부미용에도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일까. 임씨는 얼굴에 나이만큼의 주름살이 보이지 않았다.
화제를 유년시절 서리이야기로 돌렸다.
"가을이 무르익을 쯤엔 집집마다 곶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죠. 물론 우리 집도 곶감을 말렸는데 말랑말랑 해질 무렵 친구와 작당해서 옆집 곶감을 슬쩍 해 먹던 맛이란…"
훔쳐 먹는 곶감이 더 맛이 있더라는 말이다.
"내친 김에 더 말하자면 봄철엔 볶은 콩가루를 비벼 만든 콩주먹밥, 여름엔 꽁보리밥에 찍어 먹던 풋고추, 눈 오던 겨울엔 뒷산에서 사냥으로 잡은 토끼랑 꿩으로 매콤한 볶음 요리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사냥은 당시 귀했던 전화선(삐삐선)을 이용한 올가미로 꿩을 잡거나 길목을 장악해 능선으로 토끼를 몰면 위에서 감나무 작대기로 후려쳐 잡았다.
임씨는 이 때 잡은 사냥감을 마을의 젊은 친척 아지매에게 요리를 부탁해 급히 먹다가 억센 토끼 뼈에 볼 안쪽을 찔리기도 했다.
60, 70년대를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추억이 있을 법한 옛 음식과 닭서리, 그리고 토끼몰이 이야기에 빠지다 보니 그새 소주 2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극동구이
수성구 상동 들안길 삼거리 코너에 위치한 극동구이는 들안길 음식점 거리가 지금처럼 번성하기 전부터 문을 연 터줏대감.
생고기, 육회, 양지머리, 오드레기, 소혓바닥, 대창구이, 소등골 등 소주 안주감과 함께 나오는 밑반찬이 푸짐하다. 특히 소 다리 앞쪽의 기름기 없는 살을 이용한 생고기는 씹으면 쫄깃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자랑한다. 연중 내내 담아내는 곰삭은 열무김치는 이 곳의 대표적인 곁들이 반찬이다.
과음으로 속이 쓰릴 때 국물 한 모금을 쭉 들이키면 정신이 확 들 정도. 소금에 찍어 오래 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인 양지머리도 인기 안주에 속한다.
053)761-4500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작성일: 2006년 04월 12일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