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몽향 최석채 선생의 흉상을 매일신문사 로비에 세우고 7일 제막식을 가진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매일신문사는 몽향이 해방후 언론사에 첫발을 내딛고 정론직필을 몸소 실행했으며, 만년에 다시 돌아와 필봉을 휘둘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몽향이 몸담았던 매일신문이 올해로 창간 60주년을 맞았고, 흉상 제막일이 '신문의 날'이어서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더 뜻깊은 날로 기억될 전망이다.
몽향은 경북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가 본적지로 1917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김천에서 성장하면서 김천공립보통학교 등을 거쳐 일본 중앙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1942년 잡지 편집기자로 출발해 매일신문·경향신문·조선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주필을 역임했고, 문화방송과 경향신문 회장, 매일신문 명예회장 등을 지내며 세론을 대변하고 역사를 증언했다. 1955년 9월 매일신문 주필로 재직할 때 자유당 정권이 학생들을 정치행사에 동원하는 것을 맹비난한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로 30일간 옥고를 치렀으며, 신문사는 백주테러를 당했다.
그후에도 무능한 정부의 국정 혼란을 가차없이 꾸짖었으며, 군사정부의 독단과 폭거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만년에는 매일신문에 '몽향 칼럼'을 연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 1991년 서울에서 타계했다.
몽향은 정론의 대논객이었고, 직필의 참언론인이었다. 그래서 선생의 필명 앞에는 '서민의 옹호자', '여론의 목탁', '민주 언론의 기수', '정의 사회 구현의 선봉장'이라는 찬사가 늘 함께했다. 몽향은 '서민의 항장', '한국의 신문 논리', '일제하의 명논설집', '속-서민의 항장'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2000년 국제언론인협회(IPI)의 '세계 언론자유영웅(Press Freedom Hero) 50인'에 선정돼 후배 언론인과 온 국민의 긍지를 드높였다.
몽향 최석채 선생 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는 몽향의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매일신문사 지하 1층 60여 평 공간에 마련한 신문전시관에 몽향 코너를 개설하고 선생의 사진과 캐리커처, 신문 스크랩, 각종 저서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조향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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