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봄과 피그말리온 효과

입력 2006-03-28 07:32:04

그리스의 한 조각가가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이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아끼고 사랑하게 되자 이를 가엾게 여긴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 조각여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해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라고 부르는데, 피그말리온 효과는 무엇에 대해 간절히 소망하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용어이다. 가끔은 기적으로 설명되기도 하고 절대자의 은혜라고 표현되는 불가사의한 일이 실제로는 인간의 강렬한 희망이 낳은 너무나 인간적인 결과인 셈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그의 병이 얼마든지 치료 가능한 것이라고 위안을 주면서 별것도 아닌 약을 그 병에 특효가 있는 신약이라고 속여 투여하는 경우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것도 바로 이런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간절한 소망은 인간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며 완성된 삶을 살아가려는 성숙한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 여정에서 숙명적으로 맞이하는 절망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긍정과 희망의 삶으로부터 발아한다.

새로운 일년은 1월부터 시작되지만 인간의 감성이 맞이하는 새로운 일년은 봄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우리가 시간에 따라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시점을 통하여 과거를 기억하며 역사를 만들어가기 때문인데,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은 시간적 의미보다는 사건적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런 점에서 출발점 봄은 해마다 새롭다.

올해도 많은 사건들이 우리 곁을 지나쳐 갈 것이다. 예정된 사건과 예측치 못할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이 해를 인생역사의 또 한 해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희망적인 사건보다 절망적인 사건의 우세 속에서 습성처럼 절망과 한숨 속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을 잃어버린 자는 이미 인생을 포기한 자다. 따라서 희망은 인간이 선택할 사안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책임이며 의무이다.

요 며칠 하루가 다르게 만개하는 꽃들을 보며 새로운 희망에 대한 열망을 가져본다. 꽃들의 아름다움이야 내년에도 반복된다지만 이 봄의 아름다움만큼 자신의 아름다움에서 제(除)해질 것이다. 우리가 현재 맞이하는 모든 사건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희망은 인간 삶의 유한함과 한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오창우(계명대학교 미디어영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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