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종이신문을 배달받아 보세요? 난 전자종이로 전송받아 보는데…."
회사원 이수창(35) 씨는 신문 배달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점심식사 후 습관처럼 중얼거렸던 '신문이 왜 아직 안 오지'란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식사 후 사무실에 도착, 책상에 앉아 휴대전화 옆면에서 얇은 비닐모양의 디스플레이를 꺼낸다. 전자신문이다. 지면은 작지만 기존의 신문과 모양 및 형식이 똑같다. 보고 싶은 기사를 손가락으로 '터치'하니 화면 가득 확대된다. 사회면 현장기사는 '클릭' 한 번으로 동영상까지 볼 수 있다. 종이신문보다 최소한 배달시간이 단축돼 1, 2시간 빨리 볼 수 있게 됐고 기다리다 못해 인터넷을 통해 먼저 본 뒤 신문을 받아 보는 이중 수고를 겪지 않아도 된다. 이씨는 "전자신문 단말기를 휴대하고 다니며 빨리, 그것도 종이신문처럼 지면 전체를 보면서 신문을 읽을 수 있게 돼 너무 편리하고 신기하다"고 했다.
어쩌면 20년 후엔 기존 종이신문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전자종이 기술의 발달로 휴대전화나 펜, 막대형 단말기 등 개인 소지품을 통해 전자종이로 신문을 볼 날도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천 년 이상 인류역사와 함께 해온 전통 종이가 사라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자종이가 전통 종이에 버금가는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은 크다. 당장 5년 뒤쯤엔 휴대전화나 펜 형태 막대에서 유연하고 얇은 종이 같은 디스플레이를 꺼내 신문 등을 볼 수 있게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전달 매체의 일종인 전자종이(e-Paper)는 한마디로 종이의 질감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휴대가 간편하고 표시 및 삭제가 용이한 디스플레이다. 현재 E-잉크 방식의 전자종이가 시판 및 개발되고 있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나 고분자분산형액정(PDLC)을 이용, 전자종이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전자종이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쟁탈전이 예상된다.
◆전자종이(E-Paper)
전자종이는 종이처럼 가볍고 유연한 특성을 가지면서 정보를 전자적으로 입력·저장·삭제할 수 있는 차세대 매체다. 각종 텍스트나 그림파일이 종이처럼 얇고 휘어지는 물질 위에 펼쳐진다. 빠른 반응 속도, 높은 해상도, 넓은 시야각 등 시각적 특성이 탁월해 기존 종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전달 장치로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플라스틱이나 금속, 종이 등 어떤 기판상에서도 구현이 가능하고 전원 차단 후에도 잉크 입자가 그대로 남아 있어 화면이 사라지지 않는다. 또 백라이트(back light) 전원도 없어 무전원이나 낮은 소비 전력으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 원가 절감 및 경량화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전자종이는 전자신문, 전자잡지, 전자책 등 종이 대체용 전자장치는 물론 옥내외용 실시간 광고판 등 게시판용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PDA, 웹패드(web pad), 손목시계, 가격표시장치 등과 같은 이동통신 기기의 정보표시 매체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재 E-잉크사에서 만든 전자책을 비롯 역, 공항, 호텔 등 공공장소의 안내판, 옥내외 광고판, 개인용 휴대 장치 등 E-잉크 제품이 나와 있는데 가독성이 뛰어나고 옥외에서도 적합해 활용도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E-잉크사의 전자종이는 흑백 색소를 담은 미세 캡슐이 잉크 역할을 하며 전기에 반응, 캡슐들이 움직이면서 흑백 이미지를 나타내는 원리로 작동하는데 최근엔 6인치 컬러 버전도 선보였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는 한마디로 휘거나 구부리거나 접거나 말아서 사용 및 보관할 수 있는 차세대 신개념의 디스플레이 장치. CRT, LCD, PDP, OLED 등 기존의 디스플레이 장치와는 달리 유연한 재료를 사용, 곡면에서뿐 아니라 구부리거나 말아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E-잉크 방식이 아닌 OLED나 PDLC를 이용, 전자종이를 만드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늦어도 오는 2010년 전엔 이들을 원리로 하는 전자종이가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패널 속의 흑백 입자를 배전시켜 정렬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e-잉크의 경우 컬러나 동영상 구현이 쉽지 않지만 OLED는 유기물질인 EL(전자와 홀 2개가 결합하면서 발광)에서 나오는 발광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에 훨씬 유연하고 동영상 및 컬러 구현도 비교적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수분과 산소에 민감한 것이 단점. PDLC의 경우엔 유연성, 컬러, 동영상 등 기능면에선 OLED와 비슷하지만 대량생산이 가능,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시장성이 높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외 현황
현재 전자종이 기술은 원천 특허를 가진 미국, 영국, 일본 기업 등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곳은 E-잉크사와 SiPix, 제록스, 브리지스톤 등이다. 필립스와 소니가 합작해 상업화에 성공한 E-잉크 기술의 경우 현재 전자책 단말기로 시장에 소개돼 있고 1, 2년 내 5인치 크기의 두루마리형 디스플레이 출시가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의 경우 이들 기업의 기술독점 때문에 초기 시장 진입이 어렵고 막대한 기술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게 사실.
이에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기존 입자기술 중심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구동 방식의 전자종이 기술 개발에 나섰다. 대경과기원은 PDLC를 기반으로 한 신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반사형 전자종이 및 저비용 투과형 고해상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장치로 기술 국산화 및 지적 재산권 선점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PDLC를 전자종이에 채택하려는 움직임은 일본, 미국, 유럽 등 일부에서 조금씩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제품 개발에 성공한 곳은 없다. 관련 전문가들은 오는 2010년쯤엔 OLED나 PDLC를 이용한 전자종이 시판이 가능하고 이후 1, 2년 뒤엔 보급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병대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 디스플레이 연구팀장은 "기술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PDLC 기반의 전자종이는 고부가 제품으로 시장 개척이 용의할 것"이라며 "세계가 입자 기술에 치중하고 있는 만큼 PDLC 기반 전자종이에 대한 전략적인 투자는 원천기술의 지적재산권 선점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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