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한국인의 투표 성향

입력 2006-03-14 09:38:51

한국과 다른 선진국들간의 선거 행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 예를 들면 미국인들은 후보의 능력을 보고 투표를 하지만 한국인들은 후보의 단점을 보고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따라서 무능력하여 중요한 직책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단점이 적게 노출된, 검증되지 않은 무능력자들이 한국에서는 줄줄이 당선되는 것이다. 민주화이후 민주적 절차로 대통령을 선출했지만 무능력 무검증 인사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선거 풍조는 계속되어 검증되지 않아서 단점이 노출되지 않은 능력 없는 대통령들이 계속 양산되었다. 거기다가 지역감정까지 가세하여 특정 후보는 특정 지역에서 98% 의 득표율을 올렸다.

한국의 지역감정의 이유는 약간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6.25와 군부독재 때문인 것 같다. 6.25 당시 인민군은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낙동강전선까지 밀고 들어왔기 때문에 경상북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특별한 전투가 없었고 따라서 피해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나 대구북부 관문인 낙동강전선은 국군의 최후저지선이 되어 혈전이 벌어졌다. 결국 6.25 전쟁초기에 경상도 한가운데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되어 대구경북지역에 피해가 집중되었었다. 당시 대구에 사는 사람들은 피난보따리를 싸놓고 잠을 자다가 대포소리가 가까워지는 것 같으면 보따리를 들고 피난을 나서고 대포소리가 약간 멀어지는 것 같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 가는 피를 말리는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런 불안한 생활은 인천상륙작전때까지 계속되었다. 그후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인민군이 허겁지겁 후퇴를 하게 되어 또 다시 별 전투다운 전투 없이 압록강까지 밀고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 통일이 거의 확실시됐지만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의 통일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중국이 참전을 하여 다시 한번 전선은 남쪽으로 갑자기 이동 했다. 그리고는 서울 북부 휴전선 부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다 가 개전 1년후인 1951 년 부터 지루한 휴전협정이 시작되고 전투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이 전쟁을 잘 살펴보면 전라도 지역으로는 인민군의 주력이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었다. 따라서 호남인들은 인민군에 의한 피해를 심하게 입지 않았고 따라서 인민군이나 공산당에 대한 거부감도 강하게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상도, 특히 대구 경북은 6.25전쟁의 피해 집중지역이었기 때문에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이 상당히 심했다. 따라서 영남인들이 볼 때 는 호남인들은 사상이 극히 의심스러운 좌익성향으로 보이고 호남인들에게는 영남인들이 극우 보수세력으로 보이는 것이다. 결국 이 지역 감정을 해소 하려면 영남인들은 호남인들이 왜 북한에 대하여 반감이 적은지를 이해해야 하고 호남인들은 영남인들이 왜 공산주의를 그토록 싫어하는지를 이해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호남인들은 영남인들에 비해서 북한정권에 대하여 훨씬 호의적이고 대북강경파인 영남인들을 수구꼴통으로 폄하하고 영남인들 역시 호남인들을 친북 좌익성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의 선거제도가 지역감정을 더 조장 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미국의 선거제도는 한 주에서 51 % 득표율만 나오면 그 주의 선거인단 모두를 차지하기 때문에 미국식 선거라면 광주에서 열린당이 98 %가 나오거나 51 %가 나오거나 실제 득표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즉 51 % 를 넘는 득표는 모두 사표가 되지만 한국에서는 98%가 고스란히 유효 득표로 연결되기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더욱 부추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용상으로는 직선이지만 형식적으로는 간선제인 미국식 선거제도를 도입하거나 현선거제도를 대폭 수정하지 않는한 지역감정 해소는 공염불인 것이다.

일본도 한국식 직선제를 하면 수준미달의 극우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수상 영(零) 순위라고 하니 한국이라고 별 수가 있을리 없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경하기 보다는 타인의 약점을 들추길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취향때문에 향후에도 검증되지 않은 무능력자들이 당선되는 한심한 일이 계속 될 것 같아 매우 걱정스럽다.

이용재 대구경북개원내과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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