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雨水) 경칩(驚蟄)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한다. 추운 겨울 동안 얼어붙었던 땅이 봄바람과 함께 풀리는 것도 이맘때인 것이다.
멀리 하늘 아래 가뭇한 지평 위로 봄바람이 불어오면 우리들의 겨우내 얼어붙은 가슴도 말끔히 풀리게 된다.
계절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도시 사람들은 행인들의 옷자락으로부터 봄이 온 줄 알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이 이른 봄의 산과 들은 확실히 우리들에게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다. '봄은 고양이'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이야기처럼 지금 봄은 고양이처럼 오고 있는지 모른다.
해마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봄을 심으면서 또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한다.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다는 것은 옛사람들의 말이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조춘(早春)의 뜰에서 나도 이렇게 가슴 설레는 새봄을 맞게 된다.
농부들이 눈 녹은 땅을 갈아 흐뭇한 인정의 씨앗을 뿌리는 곳, 여기야말로 허식과 가식을 떠난 마음의 세계가 봄바람처럼 우리들의 가슴을 흐뭇하게 적셔준다.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온兮(봄바람 불어옴이여, 우리들의 성난 가슴 풀어주구려)라고 노래한 성현의 말이 오늘 다시금 가슴에 실감있게 와닿는다.
나는 머지않아 살구꽃이 훤히 피게 될 강 마을의 풍경을 생각한다. 비록 바쁜 세상에 쫓기는 몸일지라도 한 번쯤 이 봄의 정경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스스로 느껴오는 내부의 감성 때문에 자기를 다스릴 수 없는 타성적인 계절일지 모르나 인간의 끝없는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봄의 강물은 확실히 하나의 사치뿐 만은 아니다.
아닌게 아니라 훈훈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먼 곳에서 깜박 잊었던 친구로부터 한 장의 엽서라도 받은 기쁨이라고나 할까. 많은 일들을 훌훌 집어 던지고 어딘가 모를 긴 여행이라도 떠나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강렬한 유혹 때문인 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아무 까닭도 없이 사물에 집착하여 느끼고 뉘우치는 걷잡을 수 없이 집요한 때도 있지만, 이 찬연한 봄의 미아가 되어 살구꽃 피는 강 마을의 나그네가 된다면 어느 정도 생활의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봄이면 못물 가득 하늘 일렁여 넘쳐 흐르는
할아버지적 옷적삼에 햇덩이처럼 사랑하고 아끼던 것을
마음주어 손 받침했던 알뜰한 사연 같아서랴.
항아리 철철 넘쳐 흐르고
너와 나의 노래에 섞어부르는 흙위에
피와 살이 영글어진 잣나무,
반도의 남쪽 하늘 끝 출렁이는 파도에 덮여
오일 스토브가 타는 창 밖에
귤이 열리는
나 망내의 발 밑,
꺼진 석등이여'. ('이 푸른 강변의 연가' 중에서)
봄은 어느덧 펄럭이는 깃발처럼 먼 산과 들판으로 내려와서 긴 겨울 동안 쌓였던 눈을 녹이고, 따사로운 햇볕과 함께 작은 여울 따라 어디론가 흘러서 먼 길을 떠나고 있다.
이런 대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많은 날을 스스로 느낄 수 없는 세상에서 실로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모든 자유가 봇물처럼 일렁이며 넘쳐흐르는 이 땅에서 나도 잃어버린 날의 가난한 기억을 매만지며 어리석은 농부처럼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 정민호(시인.전 경북문협회장)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대선 출마하나 "트럼프 상대 할 사람 나밖에 없다"
나경원 "'계엄해제 표결 불참'은 민주당 지지자들 탓…국회 포위했다"
홍준표, 尹에게 朴처럼 된다 이미 경고…"대구시장 그만두고 돕겠다"
언론이 감춘 진실…수상한 헌재 Vs. 민주당 국헌문란 [석민의News픽]
"한동훈 사살" 제보 받았다던 김어준…결국 경찰 고발 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