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재발견/볼프강 슈말레 지음,박용희 옮김/을유문화사 펴냄
'파시스트의 대륙인가, 똘레랑스의 대륙인가', '예술을 사랑하는 대륙인가, 침략과 수탈 위에 이루어진 대륙인가'.
유럽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은 의외로 상반된 이미지들로 점철돼 있다. 그렇다면 유럽은 무엇인가. 지리상의 구분일까, 역사적 구분일까. 아니면 특정한 정체성에 따른 구분일까.
고대 유럽신화에서 현대의 유럽 통합논의에 이르기까지 유럽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체성과 역사를 고찰한 책 '유럽의 재발견'(볼프강 슈말레 지음,박용희 옮김)이 을유문화사에서 발간됐다.
유럽이라는 명칭이 담고 있는 의미가 관점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돼 온 만큼 유럽에 대한 명명, 설화, 신화, 그림이나 상징 등을 통해 그 변화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작업은 흥미롭다. 게다가 유럽통합이 실질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유럽의 중요성이 커져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럽은 고대 그리스-로마문화, 유대문화, 기독교문화의 혼합이다. 카롤링 제국의 시대, 르네상스, 계몽주의가 근대사의 유럽문화의 통일에 영향을 주었으며 가치공동체를 이뤄왔다.
그렇다면 유럽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그런 인식의 변화는 유럽을 나타내는 지도의 변화상에서 읽어낼 수 있다.
15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유럽 지도는 유럽 각 지역의 지도가 완성된 이후부터 전체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때 함께 등장하게 된 것은 대륙우화. 상상한 유럽을 손쉽게 회화적으로 표현한 대륙우화는 중세 세계지도를 예수의 몸으로 표현했다. 그러한 표현을 통해 유럽전반을 지배하던 종교관을 직설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지도 위에서 정치적 풍자가 최초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북부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루이 14세에 대한 적대감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로, 지구와 지도를 가지고 놀고 있는 군복차림의 군주에 대한 묘사였다. 나폴레옹 시기에 한 익명의 영국인이 그린 지도로 표현된 캐리커처는 개별 국가들을 우스꽝스러운 군주들의 두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지도에서 각 민족들은 제각기 한 조각의 땅덩어리를 자신의 소유물로 하고, 캐리커처의 인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세의 세계지도가 신앙심있는 기독교도들의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근대 초기 유럽지도가 학문적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면 18,19세기 지도는 근대 행정국가와 군사국가의 관점을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영토에 대한 관심이 늘기 시작한데다 영토 분쟁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유럽은 대대로 인간의 몸, 그것도 여성으로 비유됐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고대 신화에 바탕하고 있다.
"페니키아의 딸 유럽을 제우스가 사랑하게 됐다. 그는 황소로 변해 페니키아로 갔다. 그리고 해변에서 놀고 있는 유럽을 자신의 등에 태워 바다를 건너 크레타로 갔다. 황소는 고르틴이란 도시에서 제우스로 변했고, 유럽은 제우스를 받아들여 세 아들을 낳았다."
유럽에 관한 이와같은 고대 신화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황소 위에 앉아 있는 유럽이라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1996년, 유로화의 도입을 심리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독일은행은 전국에 배포되는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냈다. 그것은 '유럽과 황소'라는 모티브로 황소 위에 있는 에로틱한 여성을 강조했다. 그것은 유럽에 대해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는 신화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최근 유럽통합이 진행되면서 전체 유럽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한층 다양한 상징들이 등장하고 있다. 성냥갑에서부터 신문과 광고, 우표와 옷핀, 혹은 도시건축에 이르기까지 유럽표장들이 도처에 널리면서 유럽주민들의 정체성을 하나의 최면상태로 묶어주고 있다.
1800년대부터 유럽은 하나의 문화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민주적 정체성'이 유럽 사고의 새로운 축적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새로운 정체성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위협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