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에 개정된 교육공무원법에 의하여 국립대 총장을 직선제로 뽑을 때에는 그 선거관리를 관할 지역 선관위에서 주관하게 되었다. 국립대 총장선거에 관권이 합법적으로 개입하게 된 셈이다. 이 법이 대학의 자치권과 자율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법이라는 대학 측 주장과 직선제에서 파생되는 불합리한 점들을 막기 위해서 선관위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정부 측 주장이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교육은 참으로 국가 발전의 기반이며 근간이다. 때문에 이 문제를 대학자체의 문제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발전체제에 관련된 대학의 지배구조(경영구조)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한다.
"1인 1표의 투표에 의하여 정치주체의 힘, 의견, 욕구의 차가 중화되어 일반의사가 도출되고 이렇게 하여 도출된 일반의사는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투표자는 그 결과에 순응한다" 라는 것이 루소의 다수결 원리의 핵이다. 중화요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시하면 힘의 영세화(零細化), 지식의 등질화(等質化), 욕구의 선승화(善昇化)이다. 즉 도출된 일반의사가 정당성을 갖추려면 이 세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1인 1표"에 의하여 힘이 영세화되지 않고 힘이 집단화되었을 때는 투표자는 일반의사 순응자(taker)가 되지 않고 일반의사 조작자(maker) 내지 선도자(leader)로 변질되고 결론으로 도출된 일반의사는 그 정당성을 잃게 되며 투표자는 그 결과를 진심에서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연, 학연, 전임총장 선출시의 지지자 그룹, 또는 반대자 그룹 등으로 힘의 집단화가 작용하면 다수결에 의하여 선출된 총장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당성을 갖춘 총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후보자의 총장자질에 관한 투표자의 지식대(知識帶)가 C, D, F대에서 A대로 상향 등질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에 들어가면 도출된 일반의사는 실재와 거리가 먼 일반 의사가 되고 그 정당성은 약화된다. 인신공격, 흑색선전, 허위사실 유포 등과 같은 교란현상이 선거과정에 삽입되면 지식대의 상향 등질화는 어렵게 되고, 그 투표결과로 선출된 총장은 대표성을 가진 총장으로서의 자격이 미약하게 된다는 점이다.
세 번째, 투표자가 개인적 이해득실을 초월하여 오로지 조직체 전체의 공동선만을 생각하는 욕구의 선승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를 결심하면 도출된 일반의사는 그 정당성의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누가 당선되어야 나에게 유익한 급부가 돌아올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에서 구성원이 투표한다면, 그 투표로 당선된 총장은 유익한 급부를 너무 많이 거래한 정상배는 될지언정 학문의 상아탑의 라벨이 붙은 총장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국가에서의 직선제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국립대의 행정의 수장(총장)을 그 행정의 관리하에 있는 교수와 교직원이 직선하는 데는 그 합리적 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서울시청 공무원이 서울시장을 뽑자는 논리와도 비슷한 것이다. 공립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교장을 직선하겠다 하면 어떤 논리로 막겠는가.
정권형성에 기여한 보상형식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명제(어용) 총장 때문에 학문의 자율성과 대학의 자치권이 침해되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서의 직선제를 주장한다면, 학문과 교육의 장(場)인 대학이 정치의 장(場)화 되는 역기능을 제거하기 위하여 법에 의하여 선관위 개입이란 역설적인 관권의 멍에가 씌워진 오늘날에 있어서는 직선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임명제 총장제만 배제시키면 되는 것이다. 임명제 총장을 배제시킬 수 있는 총장선출위원회와 유사한 간선제로 전환시키거나, 시장경제체제에 기반을 둔 민주국가라는 헌법 이념에 부합하도록 국립대를 특수행정법인 형태로 바꾸고 그 이사회에서 선출하는 형식으로 국립대의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것이 국제화 경쟁시대인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지식인이 먼저 희생할 때이다.
유한우 계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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