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의 기도

입력 2005-12-26 11:55:34

크리스마스 이브와 성탄절, 단 이틀 사이 이 세상 사람들이 간구(懇求)한 기도는 몇 가지나 됐을까.

가톨릭과 기독교 신자들 숫자로만 셈해도 20억 가지는 쉬 넘을 것 같고 비신자와 신자 한 사람이 두세 가지 기도를 했다면 수십억 가지는 됨직하다.

아이들 같으면 '하느님이 이틀 만에 수십억 가지 소원을 무슨 수로 다 들어주나요'라고 물을 정도다.

성탄절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성서는 기록한다. 장님에게는 눈을 뜨게 해 주었고 절름발이는 걷게 했다.

예수님은 병자와 장애우의 기구(祈求)를 들어줄 때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과 함께 늘 되물은 말씀이 있다.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이 말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예수 앞에 데리고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의 나라(왕국)가 세워지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을 때도 하신 말씀이다.

이 말 속에는 네가 원하고 기도하는 그 소망이 과연 올바른 바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나무람이 담겨있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은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는 대답을 기대하며 던진 물음이었지만 예루살렘의 대중들은 병의 치유와 왕국의 높은 자리나 부탁하는 이기적 욕망뿐이었던 것이다.

또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아느냐'는 말씀은 우매한 대중들이 예수에게 무엇을 진정으로 구했어야 했는지를 몰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야고보 어머니의 소원이나 눈을 뜬 장님의 기적에 대한 성서의 복음(마태)은 인간의 기도와 소원이 이기적 소망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

솔직히 오늘 당장 길모퉁이를 걷다가 불쑥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면 우리들은 무슨 소원을 말했을까. 아마도 아파트나 돈, 그리고 건강과 출세를 먼저 말할지 모른다. 그리고 예수는 여전히 인간이 터무니없는 욕망만 원하는구나고 섭섭해 했을 것이다. 어쩌면 네가 원하는 것이 제대로 된 소원이고 합당하고 당연히 받을 만한 소원이며 나의 은총을 받을 만큼 너의 할 도리를 다했느냐는 못 미더운 얼굴을 하실지도 모른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사람들의 기도는 조금도 변한 게 없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이제 성탄절을 보내고 세모의 끝자락에 선 지금 한 해가 지나도록 못다 이룬 남은 소망들을 어떤 기도의 말로써 바쳐야 할까.

행여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돈과 아파트와 승진이 아닌 다른 낱말들을 떠올리며 이런 기도의 마음으로 새해를 살아보면 어떨까.

세상 모든 일은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한 뒤 하느님의 뜻을 기다릴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양심에 벗어난 생각과

행동으로 꾸민 일은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기도해도

이뤄지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신비롭고도

가장 기초적인 삶의 진리다/

성공된 인생을 살아가려면

한마디 말 한걸음의 행동에도

항상 하느님의 뜻에 맞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세모에 국민의 희망과 꿈에 큰 상처를 남긴 황우석 파문 같은 것도 이런 기도의 마음이 모자라서 빚어진 비극일지도 모른다.성탄절 인간들이 바친 수십억 가지 기도 중에 하늘이 이루어주는 기도는 바로 그런 마음으로 바친 기도이리라.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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