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의 명암-(下)U턴, 재U턴…부작용이 엄청나다.

입력 2005-12-07 09:18:01

U턴·재U턴… '유학 난민' 급증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중도에 돌아오는 'U턴 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 영어는 무조건 본토에서 배워야 한다며 떠밀려간 조기 유학생들이 현지 적응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돌아온 학생'들은 한국 교육에 진저리를 치며 재유학을 떠나기도 한다. 'U턴'과 '재U턴'이 거듭되면서 '유학 난민'도 늘고 있다.

■언어장벽, 왕따, 외로움…

"Stupid Korean! Only Rich."(멍청한 한국인! 돈만 많지.)

지난해 캐나다의 한 사립고등학교에 다녔던 김윤미(가명·17·여·고2)양은 고통 속에 8개월을 보냈다. 캐나다 학생들은 이유 없이 등 뒤에서 '킥킥'거렸고, 깔보는 듯한 투로 놀리기 일쑤였다. 한국 유학생들도 같은 편이 아니었다. '주말에 놀러가자'는 제안을 두어 번 거절하자 태도가 싹 바뀌었다. 점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없었고, 놀이에 끼워주지 않았다. '이방인'이자 '왕따'였던 윤미의 괴로움은 컸다.

"머리 좋은 애들은 왕따 당해도 영어가 금방 느니까 외국인들과 사귈 수 있지만··· 저는 어려웠어요." 윤미는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우울증도 찾아왔다. 윤미는 원래 계획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올 초 귀국했다.

윤미는 요즘 캐나다로 되돌아갈지 고민에 빠졌다. 하루 10과목이 넘는 빽빽한 수업시간이 몸서리치게 싫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수많은 과목에 목을 매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방과 후 학원 이곳저곳을 전전하고도 성적이 전혀 오르지 않았다. 거기다 '그 돈을 쓰고도 영어 한 과목 제대로 못한다'는 자괴감도 크다. 잘못하다간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될까 더 두렵다.

지난 4월 필리핀의 한 사립중학교로 유학을 떠난 철진(가명·15)이는 불과 4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도 폭력과 가혹행위가 존재했다. '일진회 멤버였다'는 한국인 고등학생 2명이 때리고, 돈을 뺏고, 수시로 안마를 시켰다. 거기다 술, 담배 심부름까지 강요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겠다'고 협박했다.

철진이 유학을 담당했던 관계자는 "한국 유학생들이 늘다보니 왕따문화가 횡행하고 있다"며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유학생들 간 문제가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철진이는 지난 8월 잠시 귀국한 후 필리핀의 다른 학교로 옮겨 공부하고 있다.

캐나다에 자녀들과 3년째 있는 학부모 김모(43·여)씨의 얘기다. "홀로 유학온 남자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방황을 하거나 타락합니다. 여자아이들은 잘 견디는 편이죠. 보호자 없이 혼자 보내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U턴 유학생 늘고 성적은 떨어지고…

국내로 복귀하는 조기유학생 숫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에서 국내로 돌아온 초중고생이 2만7천 명을 넘고 있다. 같은 기간 3만7천76명이 해외유학을 이유로 국내를 빠져나갔다. 대구의 초·중·고 경우 2002년 324명, 2003년 368명, 지난해 315명 등 3년간 1천7명이 되돌아왔다. 같은 기간 1천94명이 유학을 떠났다.

국회 교육위원인 임태희(한나라당) 의원은 "유학, 파견근무, 이주 등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수를 감안해도 꽤 많은 학생들이 조기 유학을 갔다 현지적응에 실패하고 되돌아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2년간 캐나다에서 자녀들과 어학연수를 떠났다 올해 초 돌아온 한 학부모(51·여)는 "애들이 영어만 빼고 다른 교과목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아직도 애를 먹고 있고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해 불안하다"며 "떠나기 전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였는데 2년간의 공백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조기유학을 떠나는 학부모, 학생들이 정작 귀국 후에 어떻게 적응할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씨에스해외유학원 신숙경 원장은 "조기유학은 △학생의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부모가 함께 갈수록 좋으며 △사전에 철저히 현지사정을 조사하는 등 3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성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돈과 세월만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박병선·최병고·서상현기자

사진: 단순히 영어공부를 위해서라면 굳이 조기유학을 갈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대구시교육청에서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대구국제이해교육센터의 영어수업 장면.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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