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시평-'대형 할인점' 명칭 유감

입력 2005-11-30 11:31:32

대형 소매점이 재래시장과 동네가게를 다 죽이고 있다는 인식은 당사자들만 발등의 불일 뿐 그들의 다급함을 헤아리기 어려운 시민들에게는 강 건너 불이나 마찬가지이다.

우선 덜 주고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은 소위 '대형 할인점'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파는 대부분의 공산품이 메이드 인 차이나,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 등 인건비가 비교적 싼 동남아시아 제품 일색이란 것과, 이러한 대형점의 물품 구매체계가 훗날 지역경제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줄지에 대하여는 그냥 지나치기 때문이다.

대형 소매점의 주된 역할이 소비자에게 값싸고 질 좋은 물품을 공급하는 것 이외에도 생산 및 납품업체의 이익을 최대한 고려해 생산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여야 함에도, 지역 곳곳에 증설을 추진 중인 대형점들 간의 경쟁은 판매가격을 낮추는 데 급급하다 보니 납품업체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이러한 추세로 나간다면 대형점 납품을 위주로 사업을 하는 지역 업체들마저도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그간 대형점이 물가를 안정시키고 우리나라 유통산업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는 등 순기능적인 면이 있었다고 하여도, 현실적으로는 대형점이 도심 이곳저곳에 설치되면서 대문만 나가면 쉽게 접할 수 있던 우리 이웃의 빵가게, 세탁소, 옷가게, 정육점, 과일가게 등이 이제는 한집 두집 문을 닫게 되면서 동네 길거리마저 황량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새 잊히고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에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중소 상인들을 보호한다며 대형 소매점 영업시간과 출점(出店) 규제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법률개정에 앞장서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법 개정을 통해 중소상인을 돕는다면서도 대형 소매점을 대형 할인점이라고 불러대는 것을 보고는 진정으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아심을 가진 적이 있다.

이미 시민들 입에 익어 무턱대고 불러대는 대형 할인점은 유통산업발전법이 제정될 때만 하여도 대형점이라고 정의되어 있었으나, 산업자원부에서 자연녹지지역의 대형할인점 등 설치 운영에 관한 고시를 제정하면서 대형 할인점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으니, 이제라도 다급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형 소매점으로 명칭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당초 고시 제정 의도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녹지지역에 대형소매점을 창고형태로 설치토록 하여 대량판매와 할인판매를 하도록 하자는 데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녹지지역이 아닌 도시 중심지에 설치가 늘어나면서 대형소매점과 중소상인 간의 대립과 시설 허가과정에서의 끊임없는 논란을 가져왔고, 급기야는 급격한 재래시장과 동네상가의 몰락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형 할인점이라는 잘못된 명칭을 고쳐 쓸 때가 되었다. 대형 할인점이라는 명칭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도심에서 벗어난 외곽지역의 녹지지역에 설치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품질, 서비스 방식 등이 법 취지와 맞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가운데 명칭만 대형 할인점으로 쓰고 있어 소비자들로 하여금 대형으로 할인판매하는 곳으로 오인케 하고 있음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최근 들어 일부 언론사가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대형소매점을 대형할인점으로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며 고쳐 부르자는 제안을 하고 대형소매점으로 부르기에 앞장서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방송, 신문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대형할인점이라는 명칭을 계속하여 쓰고 있다. 그만큼 대형 할인점이라는 이름은 신문, 방송, 학계, 소비자 구석구석까지 각인되어 쉽게 고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행 자연녹지지역의 대형 할인점 설치 운영에 관한 고시 명칭을 자연녹지지역의 대형소매점(또는 대형 유통점) 설치 운영에 관한 고시로 변경하고, 늦기는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전 언론기관, 정부기관, 학계 등이 앞장서서 대형 소매점으로 불러주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김종기 대구경북중소기업청 대구남서부소상공인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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