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입력 2005-11-26 09:13:31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최재천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0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발전해온 과학기술은 이제 인간을 복제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사유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탐구 능력은 미지의 세계를 하나씩 하나씩 개척하며 신의 영역까지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류는 항상 도덕적 문제에 직면해 왔다. 최근 불거져 나온 황우석 교수팀의 난자 출처 논란 같은 윤리성의 문제다. 과학 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미래 과학의 모습은 인문학과 함께해야 하는 양날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의미있는 책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가 완성됐다. '대한민국 지식 사회의 열린 횡적 소통'이라는 개념으로 기획된 대담 시리즈의 1차 완결판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인문학자 도정일(경희대 영어학부·비평이론) 교수와 문학적 소양을 갖춘 동물학자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생물학) 교수 두 사람이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의 운명'을 테마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벌인 10여 차례의 대담과 4차례의 인터뷰를 책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왜 두 사람일까? 도정일 교수는 최근 2~3년 동안 '기적의 도서관' 건설과 '책 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 등 사적인 일보다 공적인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다. "이성과 상상력은 함께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도 포기해선 안 돼요.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세상, 그런 복합적인 세상이 좋은 세상인 거죠."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동물행동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최재천 교수는 과학을 과학자들만의 커뮤니티 바깥으로 끌고 나온 귀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과학자도 실험실에서 벗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오래 전부터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화를 강조해온 지식인이다. 그래서 과학과 대중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알면 사랑하게 되죠"라 믿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 '자연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이번 대담의 절실함을 이미 느끼고 있던 차였다. 도교수는 생명공학의 시대에 "생물학에 대해 인문학이 거들고 비판해야 한다. 모든 가치의 앞자리에 '인간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놓고 생각하면서 무한질주의 문명 발달을 냉철히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최교수는 "배아 복제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인문학과의 대화가 절실하다"고 적었다.

61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 말해주듯 두 사람이 나눈 대담의 주제는 13개 장에 걸쳐 있다. 유전자와 문화, 복제와 윤리, 창조와 진화, 신화와 과학, 사회생물학과 정신분석학 등 13개의 영역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지식과 역사로 풀어보는 내용들이 줄줄이 펼쳐져 있다. 이 대담의 과정에서 뿌리뻗은 수많은 이야기들 또한 새로운 읽을거리로서 가치를 지닌다.

두 사람의 대담이 이끄는 결론은 21세기형 인간인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공생인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서 살아남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게 최교수의 주장이다. 도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두터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 이를 통해서 "타인, 혹은 타자를 이해하자"는 말이다.

'가슴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며 공생해 살아가는 세상' 첨단 생명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이 지향해야 할 세상이다.

책 뒤에 곁들여진 250여 개의 쟁점 찾아보기 메뉴가 두 사람의 대담을 더욱 깊이 음미해 보려는 독자들에겐 일일이 책을 뒤져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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