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아트센터 개관 기념 '한국의 장롱전'

입력 2005-10-17 10:18:01

대구아트센터 개관 기념으로 30일까지 열리는 '한국의 장롱전'에 가면 옛 생각이 난다. 이따금씩 찾아가는 시골집 풍경이다. 방 한구석에 놓여있던 장롱들, 그 속엔 할머니의 옷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의 책이 들어 있었다. 노리개·사주단자도 찾을 수 있었다. 그리운 향토색의 목가구 위로는 포근한 담요가 놓여 있었다. 1, 2층 250평의 5개 전시공간을 가득 채운 130점의 작품들이 추억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대구보건대학(학장 남성희)에서 수집한 250여 점의 장롱에서 고르고 골랐다는 이번 전시작품들의 제작 연도는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초로 다양하다. 100년이 훨씬 지났으니 참 오래도 됐다. 그러나 골동품일 수만은 없다. 지금도 누군가의 집에서, 시골 어디에선가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장인(匠人)의 기술로 만들어졌기에, 그러면서 동시에 장인의 혼이 담겨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1전시실에서 의걸이장(내부에 굵고 긴 횃대를 가로질러 두루마기·관복·장옷 같은 긴 옷을 걸쳐 놓을 수 있도록 만든 장)을 살펴보고 제2전시실로 가면 2층농(籠)이, 제3전시실에선 3층장(欌)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제4전시실에선 찬장·책장이, 제5전시실에는 머릿장(머리맡에 두고 쓰는 장)이 그 단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품목별로 5개 공간을 채우고도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다고 한다.

보관을 위해 하나하나 정성들여 손질을 했다지만 전시된 장롱에는 어머니들의, 그 어머니들의 손때가 가득하다. 색이 바래고 긁힌 자국도 보인다. 곳곳에 흠집도 가득하다. 하지만 그 속엔 조상들의 생활이 숨겨져 있다. 정성 들여 다림질한 옷을 개어 두고, 다 읽은 책을 쌓아두고, 이불을 올려놓던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대별·지역별로 변화 양상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경상도의 장롱이 소박함을 담고 있다면 경기도 장롱은 장식으로 한껏 멋을 부려놓았다. 후대로 오면서 꾸밈의 종류도 가짓수도 많아졌다. 큐레이터 손영학(42) 씨는 "나무의 색과 향기, 결, 제작 방법, 장석(裝錫) 모양, 그림, 글씨 등을 함께 살펴보는 것도 관람의 재미를 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소목장의 기술과 조형감각, 구입하는 사람의 안목과 경제적 능력, 쓰는 이의 정성과 애정의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탄생한다는 명품 장롱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말이다.

만들어진 시대의 생활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장롱들, 언뜻 보면 비슷해도 똑같은 것 하나 없는 장롱들로 옛 조상들과의 교감을 꾀할 수 있다. 한국의 고가구는 대구아트센터에서 상설전시될 예정이다. 053)320-1800.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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