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조선의 지식인들과 문명의 연행길을 가다

입력 2005-10-15 09:45:07

중국은 매우 친숙한 존재이면서 아직도 막연한 환상이나 두려움의 대상이다. 우리가 그나마 중국을 친숙하게 여기는 것은 지리적인 인접성에다 조선시대의 지속적인 우호관계와 일제의 압제를 함께 경험한 사실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지는 까닭은 언제나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군림해왔던 오랜 역사적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중국에 대한 무지다. 그래서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중국을 알아야 하고, 두나라 사이에 축적돼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연행'이란 연경행(燕京行)의 줄임말로 외교를 목적으로 중국에 건너간 중국 사행(使行)을 통칭하는 말이다. 명나라 시대에 중국 사신의 행차는 천자에게 조회하러 간다는 뜻인 '조천'(朝天)이라 했다.

그러나 명이 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진 후에 오랑캐를 떠받드는 말을 사용할 수 없어, 가치판단이 배제된 '연행'이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이다. 연행은 한국과 중국을 잇는 큰 길이었다.

'조선의 지식인들과 함께 문명의 연행길을 가다'(푸른역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김태준(전 동국대 국문과 교수),이승수(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김일환(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등 저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학자들이 2003년부터 2년간 몇 차례의 연행로 답사를 정리한 것이다.

연행길에 나선 조선 지식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연행로를 재구성하고, 그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고민들이 현재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연경(燕京)은 원.명.청의 수도였던 북경의 옛 이름이다.

조선 후기 북경을 다녀오는 사절단을 일컬어 '연행사'라 했으며, 사절단이 오간 길은 '연행로', 이들이 남긴 기록을 '연행록'이라 했다. 압록강을 건너 북경에 이르는 연행길은 천년 가깝게 이어온 교역과 문명의 통로였다.

이 연행길은 한해에도 2번 이상, 한번에 대개 500여명씩의 조선사람들이 오간 길이다. 사대외교였다는 평가와 현실적인 무역제도였다는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수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을 했고, 수백 권에 달하는 여행기를 남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행사들이 지나간 길을 직접 밟으면서 보고 느낀 감상과 직접 찍어온 현장 사진들을 역사적 기록과 버무려 완성한 이 책은 조선시대 연행로의 현장 답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랫동안 쓰지 않아 버려져 있던 연행로의 대략을 인문.지리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큰 성과이다.

지적 탐구심으로 넘쳤던 옛 선비들은 연행을 견문을 넓히고 세계와 호흡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호기로 여겼다. 특히 박지원.박제가와 같은 북학파 학자들은 연행의 체험과 견문을 통해 학문적인 가설을 확인하는 한편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전망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조선 지식인들은 연행을 통하여 조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변화하는 세계정세를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가 연행길을 따라가는 것도 지난 역사를 바로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한중관계를 비롯한 복잡한 국제정세를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향래기자 bulsa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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