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참여에 열정 바친 유태系 극작가

입력 2005-10-14 10:41:33

노벨문학賞 해럴드 핀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헤럴드 핀터(75)는 살아있는 영국 최고의 극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적극적인 현실참여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인물이다.

이번 주 75세 생일을 맞이한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핀터는 문학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라크 전쟁을 맹렬히 비난하는 등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 세계의 부조리에도 적극적으로 항거해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전기를 쓴 비평가 마이클 빌링턴은 "핀터는 예술과 현실 속에서 공인된 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자이자 영원한 사회적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피터가 20세기 후반 현대 연극에 미친 영향을 지대하다. 1957년 처녀작인 '방' 이 연극 무대에 오른 뒤 3년만인 1960년 이미 그는 유명해져 있었다. 이때부터 그의 영국적이고 긴장감이 넘치며 애매모호한 스타일을 뜻하는 '핀터식(Pinteresque)'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그가 연극에 미친 영향을 컸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선정 사유서에서 "핀터는 극장을 닫힌 공간과 예측할 수 없는 대화라는 근본 요소들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에 의해 좌우되고 가식은 무너진다. 최소한의 줄거리 속에서 연극은 권력투쟁과 대화의 숨바꼭질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피터의 연극은 애초에는 부조리극의 일종으로 여겨졌으나 나중에는 평범한 대화 속에 숨어 있는 지배와 복종 관계가 펼쳐지는 것을 엿듣게 해주는 새로운 장르로받아들여지게 됐다"고 한림원은 평가했다.

핀터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뒤 "50년 동안 희곡을 써 왔지만 정치적인문제에도 적극 참여했다. 어떤 때에는 정치와 예술 두가지가 조화를 이루기도 했고때로는 그렇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핀터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 폭격 등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이 추진한 일련의 외교정책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가했다. 2002년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해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앞으로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블레어 총리는 "망상에 사로잡힌 멍청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량살인자"라고 조롱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 이후 희곡 집필 중단을 선언하고 이라크 침공을 비난하는 시를 쓰는데 주력했다. 그가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는 시를 모아 발표한 시집은 지난해윌프레드 오웬상을 받기도 했다.

핀터는 지난 3월에 한 반전연설에서 "우리는 이라크인들에게 고문과 클러스터폭탄, 열화 우라늄탄, 수도 없는 무차별적 살인 그리고 비극과 모욕을 가져다 주였다. 그리고 그것을 중동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져다 주고 있다고 부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런던의 유대계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핀터는 성장하면서 반유대주의를 경험했으며 이것이 극작가가 된 계기가 됐다. 그는 1949년 징집을 거부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벌금을 받기도 했다.

청년시절 이런 경험은 그로 하여금 좌파적 정치철학을 갖게 했으며 이런 정치적경향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생일파티', '벙어리 웨이터' 등 초창기 작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기관이휘두르는 폭력의 위협에 개인이 노출돼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최후의 한 잔'( 1984), '산골 사투리'(1988) 등에는 고문과 핵문제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핀터의 최신작 '옛 것에 대한 기억'은 2000년 발표됐으며 런던 국립극장에서 공연됐다. 유머있고 유능하며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화를 잘 낸다는 평을 듣고 있는 핀터는1956년 여배우 비지안 머천트와 결혼했으나 1980년 이혼을 했다. 이후 역사가이자작자인 앤토니아 프레이저 여사와 재혼했다.

런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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