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관의 인물탐방] 사회정의실천시민연합 박두익 대표

입력 2005-10-07 11:45:46

"국민에 다가가는 시민운동 펼칠 터"

지난 주말 강원도에서 열린 '시민운동가 대회'에서는 "투사형, 활동가형, 전문가형에서 동네 아저씨 같은 리더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싸움과 투쟁을 연상시키는 시민운동가 모습으로는 시민들에게 다가서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잘 표현한 말이다. 민주 개혁이 최대 화두였던 과거 행동방식으로는 자칫 압력단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 이들도 많다.

사회정의실현시민연합(사실련) 박두익(朴斗翼· 59) 대표는 "고소, 고발, 비판, 감시보다 예방 캠페인이 사실련 운동방향의 핵"이라고 한다. 얼마 전 서울 시청 일대에서 한 가두 행진 캠페인 주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듭시다' 였다. 우리 경제성장 기본 축이었던 노동자 근로의욕과 기업가 모험정신, 관료들 헌신 등 사회 전반의 의지가 허물어졌기에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설명을 곁들인다.

그와 사실련 회원들은 우리 사회의 반기업 분위기를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고 믿는다. 기업가를 아끼고 기업인에게 용기를 북돋워 사회 분위기를 친기업적으로 바꾸어 가는데 시민단체들도 힘을 합쳐야 한다고 본다.

가출 청소년 문제도 사실련의 최대 관심사다. 매년 수만 명에 이르는 가출 청소년 문제는 국가의 미래 인력낭비일 뿐 아니라 사회 범죄의 온상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사실련은 시민단체로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대표를 맡고 있는 그 역시 마찬가지다. 발족은 이미 10년이 넘었다. 그가 국회와 정당을 오가며 전문위원으로 활약할 당시 만든 '한국기초사회연구회'가 모태다.

발족 초기 벌인 '제자리 찾기 운동'은 나름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세미나도 열고 이런저런 행사도 벌였다. 당시만 해도 후원자가 끊이지 않아 돈 걱정은 몰랐다. 그러나 돈을 몰랐던 결과 그에겐 거액의 빚이 남겨졌다. 퇴직금을 쏟아붓고도 모자랐다. 쌈짓돈을 털어 준 아내에겐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맥을 추지 못한다.

대학졸업 후 치른 행정고시 시험에서 2차까지는 합격했다. 통과 의례로 여겨지던 3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고교 시절 선봉에 선 6·3 시위 전력 때문"이라고 믿는다. "운동했느냐" 고 묻는 면접관에게 "태권도 3단" 운운하다 "야 그 운동 말고"라는 고함소리를 듣고 쫓겨났다.

서울 종로의 행정고시 학원에서 경제학 강사로 전전했다. 그러다 1988년 통일민주당 정책 전문위원 모집에 선발됐다. 그렇게 시작한 정치권 언저리 생활을 10년 가까이했다.

군위 우보면 출신으로 계성고와 영남대를 나왔다. 재경 군위군 향우회장을 맡고 있다. 재력도 없는 처지에 떠밀려 맡았다고 한다. 한때 운영하던 대구경제포럼 활동은 중단한 상태다. 돈과 여력이 없는 그로서는 꾸려 갈 형편이 아니다.

생활비는 곧 초등학교 교감으로 승진할 아내가 책임진다. 딸만 둘에 맏딸은 연극단 조연출을 맡고 있다. 그와 닮아 "돈 안 되는 일에만 열심"이라고 한다. 출세한 것도 부자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그인지라 주변의 평가도 제각각이다.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살맛 나는 사회를 꿈꾸는 그의 지금 위치는 시민운동가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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