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영화감독 박철수 씨

입력 2005-09-30 09:43:41

"제 영화요? 어디로 '튈지' 저도 몰라요, 허허"

"고향에서 제 이름을 건 영화제를 하다니, 감회가 새로운데요. 극장 하나 없는 청도에 새로운 문화적 토양이 됐으면 합니다."

10월 5일부터 8일까지 청도와 대구 일대에서 열리는 '박철수영화제'를 앞두고 박철수(57) 감독이 28일 대구를 찾았다. 청도군청이 주최하고 대구한의대가 주관하는 이번 영화제는 영화감독의 이름을 건 국내 최초의 영화제로, 영화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박 감독은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경북여상 교사를 했을 정도로 대구와 인연이 깊지만 "정서가 맞지 않은지 대구만 오면 늘 긴장된다"고 한다. 그런 박 감독이 지난 3월부터 대구한의대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번 영화제가 구체화됐다.

소신 있는 영화제작으로 한국영화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박 감독은 자리에 앉자마자 현재 영화계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한국영화는 지금 상당히 위험수위에 와있습니다. 제작비 본전을 건지는 데에 단관시절엔 관객 5만 명이면 됐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이 대세인 지금은 200만 명은 영화를 봐야 그나마 본전인 셈이죠. 한국영화가 어느새 자본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어, 돈이 주인이 됐어요."

이러한 영화제작 현실과 맞서기 위해 박 감독은 새로운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 합리적인 제작방식과 적절한 예산, 거품 없는 배우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하고 질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젊은 감독 30여 명과 함께 결성한 제작 네트워크 NCN(New Cinema Network)가 곧 결실을 얻을 전망이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의 소액투자를 받아 자본에서 자유로운 창의적이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 "이 운동은 프랑스의 누벨 바그나 북유럽의 도그마처럼 세계 영화계의 판도를 틀림없이 바꿔놓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처럼 영화계에서 매번 '튀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아마 정규 영화교육을 받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네마 키드'만이 영화판을 기웃거리던 시절, 그가 대학교 2학년 때까지 본 영화라곤 고작 2편뿐이었다. 대구상고 재학시절에는 늘 외로웠다. 시를 쓰고 교지 편집하는 일과 공부만 하는 '바보 모범생'이었다는 그는 당연히 은행원이 될 줄 알았던 주변의 기대를 깨고 대학에 진학했다. 박범신, 이외수와 어울리며 소주를 마시며 문학을 이야기하던 대학생이던 그는 그 후에도 경북여상 교사, 대기업을 잠깐 거친 후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너무나 멋있는 사람을 발견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나 싶어 봤더니 신상욱 감독이었죠. 그 길로 사표를 쓰고 영화판에 들어갔어요."

1979년 '밤이면 내리는 비'를 시작으로 감독에 데뷔한 후 "값비싼 필름을 원없이 써보고 싶어서" MBC방송국 스카우트 제의에 응했다. 10여 년간 방송사에서 일하면서도 80년대 초반부터 해외 영화제를 돌아다녔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그 후 다시 영화감독의 자리에서 '어미', '301·302', '학생부군신위', '녹색의자' 등 문제작들을 발표했다. 영화감독들이 조로(早老) 또는 스스로 도태되는 현실에서 20여 편을 꾸준히 발표해온 감독은 드물다. 게다가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개성강한 영화를 발표해왔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건 영화제가 가능한 것.

"언젠가 베트남전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1년 2개월의 베트남전의 기억은 늘 강렬하거든요. 무공훈장과 문화훈장을 둘 다 받은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걸요." 그 외에 영화 계획에 대해서는 자신조차도 '어디로 튈 지 모른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번 영화제에서 그의 대표작 8편을 청도군청 앞 야외무대에서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가진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작가주의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제로 변모할 계획도 갖추고 있다.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고향 청도는 지금껏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그는 청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영화라는 대중문화와 극장 하나 없는 청도 사이의 거리가 커요. 그 사이에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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