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리산 쌍계사 근처에 있는 다원에 들른 적이 있었다. 다원에는 나무 정자와 의자가 함께 있었는데 그곳에서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차 한 잔을 마셨다. 사십여 분 동안 조용히 앉아 차를 달여내며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듣노라면, 그리고 계곡의 돌밭 사이에 있는 차나무의 진한 초록빛을 보노라면, 마음속에 있는 바쁨이라는 독이 씻겨나가는 듯했다.
사람들은 늘 바쁘다. 운전할 때나 걸을 때, 그리고 밥을 먹을 때도 바쁘다. 심지어 느긋하게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차나 술 마실 때조차도 그러하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 바쁜 것이겠지만 '왜 바쁜지', '무엇을 위해 바쁜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차를 마실 경우에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간편하게 커피를 마시거나 일회용 녹차를 우려서 마시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차 한 잔이 갖는 마음의 여유를 찾아볼 수는 없다.
중국 명대의 다인 허차서는 차(茶) 마시기에 좋은 때를 마음과 몸이 한가할 때, 마음이 어수선할 때, 깊은 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손님과 주인이 서로 정성스럽고 친할 때, 밝은 창가 깨끗한 책상을 마주 할 때 등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차란 소박한 심성을 지닌, 서로 탈속한 이야기들을 한가롭게 나누며 즐길 수 있는 벗과 더불어 마시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그래서 차를 달여내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정성이고 차를 마신다는 것은 서로 간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 상대로는 자신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소탈하고 한가한 마음을 서로 나눌 줄 알았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삼십 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차를 마신다는 것은 쉬울 것 같으면서도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 바쁨으로 인하여 마음이 시간을 내는 데 인색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시간에 대한 인색함은 미술과 음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가령 그림을 대충 빨리 보거나 아다지오의 느린 음악보다 알레그로의 빠른 음악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그러하다.
이런 때일수록 차 한 잔의 여유로 시간에 대한 인색함을 없애고 마음의 한가로움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럽의 경우처럼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며 가볍게 담소하는 것도 좋다. 친구와 더불어 홍차를 마셔도 좋다. 그래서 바쁨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서로가 서로에게 진솔한 마음을 여유롭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동학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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