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

입력 2005-09-23 08:13:37

17세때 동갑내기 남학생 이석(이태성)과의 애틋한 추억을 갖고 있는 30세의 인영(김정은) 앞에 과거의 이석과 똑같이 생긴 남학생이 등장한다. 게다가 이름까지 이석이다.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남학생을 쫓아다니는 교복 차림의 갈래머리 여학생이 등장하고, 그 여학생의 이름도 자신과 똑같은 조인영이다.

논리로 이 영화를 지켜보던 관객이라면 여기서부터 혼란에 휩싸인다. 그 뒤로도 영화 속의 시간은 심심찮게 시공간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학교 양호실 침대에 누워 있는 인영은 30세 인영의 17세때 모습인가, 아니면 30세 인영과 공존하는 17세의 또다른 인영 인가? 이런 구분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이런 혼란은 딱 한가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약간씩 정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잊을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사랑의 기억이 있다'는 것임을 알고 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거에 있었던 17세의 이석과 현재의 17세 이석, 30세의 이석은 같은 사람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소재 면에서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30세 여자와 17세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데 있다. 파격적인 러브 스토리지만, 이미 중학생들의 사랑('제니, 주노')에다 수없이 많은 드라마들 속의 '알고 보니 친척' 스토리에 노출된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지우 감독은 행운아다.

10년 전, 아니 5~6년 전만 해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주인공들은 기껏해야 주위 사람들의 냉대 속에 눈물과 한숨을 지으며 고무줄 없이 번지점프를 하는 운명을 벗어나기 힘들었겠지만, 시대를 잘 타고 난 덕분에 '사랑니'는 사뭇 유머감각 넘치는 밝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공로는 대부분 여주인공 김정은에게 돌아가야 옳다.

김정은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관객의 입가에 시종일관 웃음이 감돌게 하는 것-물론 '파리의 연인' '루루공주'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은 물론이고,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강한 설득력을 더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미성년자를 침대로 끌어들인 뒤 "걔는 왜 해도 늘지를 않을까?"라고 독백하면서 '이런 사랑이 왜 나빠? 전혀 나쁘지 않아'라는 설명을 눈빛 하나로 모두 해치운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사랑니'는 결코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약간 둔한 관객은 17세 인영이 왜 한밤중에 속옷 빨래를 하는지, 30세 인영은 왜 자신있게 "나이 어린 애가 거짓말하면 안돼"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기자시사회에서는 별로 웃음이 터지지 않았지만, 이런 유머도 있었다.

이석: 인영이 프랑스 가 봤니?

인영: 응.

이석: 어디?

인영: 파리...

물론 파리에 간 것은 인영이 아니라 '파리의 연인'이었던 김정은이지만, 이런 유머는 자칫 딱딱해 질 수도 있었던 영화를 부드럽게 하는데 큰 몫을 했다.

영화 '사랑니'는 김정은의 잔잔한 변신과 정지우 감독의 세심한 연출(윤리 교과서가 세계지리 교과서로 살짝 바뀌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덕분에 보기 드문 수작으로 기억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한국에도 호러 아닌 감성형 판타지 영화가 자리잡을 수 있다는 효시가 될 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살게 되는 사랑니는 가끔은 한 두 시간씩, 어쩌면 며칠씩 이어지는 간헐적인 통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첫사랑의 기억도 그렇다'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그나자나 영화를 보고 나니 사랑니를 아예 뽑아버린 사람은 지나치게 삭막한 인생을 선택해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29일 개봉.

스포츠조선 송원섭 기자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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