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이번 추석엔 재래시장 이용을

입력 2005-09-13 11:40:24

#1. 시골 소년에게 시장은 '마법의 상자'와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 솜사탕도 사먹고,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이 큰마음 먹고 옷이나 운동화를 사줄 때엔 마음이 한껏 들뜨기도 했다. 시장 한구석에서 연거푸 터져나오는 뻥튀기 장수의 튀밥 튀기는 소리는 무서웠지만 뻥튀기 맛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소년에게 시장은 별천지이자 '요지경 속'이었다.

#2. 가장이 된 소년은 시장 대신 할인점을 찾는다. 철제 카트를 몰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기저귀나 분유, 휴지, 세제, 과일 따위를 쓸어담아 계산대 앞 길게 늘어선 줄에 합세한다. 바코드를 읽는 삑삑대는 기계음도 귀에 거슬린다. 기다리는 뒷손님의 신경을 거슬릴까봐 허겁지겁 신용카드로 계산을 끝내고, 매장을 빠져나온다. 그에게 할인점은 무미건조한 공간이며, 쇼핑은 고역일 뿐이다.

기성세대들에게 시장은 정겨운 추억의 장소다. 거기엔 세파를 헤쳐나가는 끈끈한 삶들이 있고, 사람 사이의 훈훈한 정도 있어 아직도 시장을 찾는 기성세대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할인점을 필두로 한 대형 유통업체들 공세에 밀려 재래시장은 생존의 갈림길에 놓였다. 전국 재래시장은 1천695개(대구 123'경북 178), 점포는 23만 곳, 장사를 하는 상인은 30만 명으로 외형은 유지하고 있으나 속사정은 말 그대로 위기상황. 시장의 전체 매출액이 1년 새 1조5천억 원이나 줄고, 빈 점포 비율도 17%가 넘는다.

재래시장이 사양길에 들어선 이유로는 시설 노후화, 주차장 부족 등 자체 요인도 있지만 할인점의 시장잠식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점포 164곳, 매출 11조 원이던 할인점은 작년엔 점포 274곳에 매출 22조 원으로 급성장했다. 할인점 1개가 새로 문을 열면 주변 재래시장 7곳의 매출을 잠식할 정도로 '공룡 할인점'의 파괴력은 무섭다.

추석을 앞두고 어려움을 겪는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확산돼 반갑기 그지없다. 대구경북중소기업청 직원들이 영주'안동의 재래시장을 찾아 재래시장 이용 캠페인을 벌이고, 전국 재래시장 점포 3천 곳의 상품을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는 '에브리마켓'(www.everymarket.co.kr)도 중소기업청에 의해 문을 열었다. 포항시는 공무원과 가족들이 솔선수범해 재래시장을 이용하기로 하고, 안내문을 배부하는 등 시민들을 대상으로 재래시장 이용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지역 재래시장들도 제수용품 할인, 무료배송'차례상 대행 서비스 및 맞춤과일 판매 등 시장별 특성을 살린 마케팅에 나서며 고객 유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번 추석 제수용품은 값도 싸고 인심도 좋은 시장에서 마련해 어려운 상인들에게 힘도 주고, 훈훈한 정도 느껴보면 어떨까.

이대현 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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