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연배우가 자신이 출연중인 작품을 더이상 신뢰할 수 없다며 촬영거부 의사를 밝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주말 방송가를 뜨겁게 달군 주인공은 SBS TV '루루공주'의 김정은이었는데요.
다행히 반나절 만에 "일단 촬영을 계속하겠다"고 복귀뜻을 보였습니다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루루공주'는 드라마 방송 초반부터 간접광고와 억지설정 등의 이유로 지적을 받아왔던게 사실이고, 다름사람도 아닌 주연배우의 불만으로 터져나왔으니까요.
김정은은 10일 오전 인터넷 팬카페에 '죄송합니다'란 글을 올려 "더이상 여러분을 속일 수 없다. 다 소진돼버린 이야기들을 억지로 늘여서 쥐어짜가며 연기할 자신이 이젠 없다"는 고 했습니다. 그녀는 또 "연기를 하면서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진심으로 열심히 하면 믿어주겠지' '진실하게 하면 통할거야'라는 믿음 뿐이었다"면서 "지금 이 순간 그 진심과 믿음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연기를 계속해 나갈 수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썼습니다.
이날 현재 6회 분량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출연불가를 공식적으로 밝힌 셈인데오. 드라마 종반의 가장 중요한 시목이란 점에서 불거진 주연배우의 이런 불만섞인 의사표시는 방송가에 엄청난 파문을 예고했습니다. 불똥이 떨어진 방송사와 제작사는 부랴부랴 '김정은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는 등 사태수습에 나섰고, "주연배우로서 책임을 끝까지 지겠다"는 김정은의 번복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기돼왔던 드라마의 과도한 간접광고 및 PPL의 논란은 지금부터 시작될 조짐입니다. '겨울연가' 히트 이후 외주제작사의 드라마 제작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난 상황에서 불거진 구조적인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드라마가 히트해도 제작사는 밑지고 방송사만 배불린다"는 말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만, 외주제작사는 적자를 메꾸기 위해 상업화된 제작풍토로 변질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청률을 올리기에 혈안이 돼 갈수록 파격적인 내용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건 더 말할 것도 없구요.
이미 알려진 대로 '루루공주'는 첫회부터 김정은이 모델로 있는 웅진코웨이를 연상시킨 설정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코데이'라는 드라마속 상표는 글자만 좀 다를 뿐 누가 봐도 특정제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김정은이 드라마 설정과 무관한 '비데공주'로 불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소품도 대부분 PPL로 채워졌습니다. 김정은이 들고 있는 강아지 인형은 대형할인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입니다. 너무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광고인 셈이지요. 특정사 제품임을 알려주는 레테르만 보여주지 않으면 상관없다지만, 눈치뻔한 시청자들이 모를리가 있나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지요.
광고가 격감한 상태에서 드라마 제작에 타산을 맞추지 못한 방송사들이 그동안 왜 줄기차게 간접광고 허용을 요구해왔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김정은 정준호 등 최고의 스타급 주연배우로 크게 기대를 모았던 것에 비하면 10%대에 머문 시청률은 또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재벌가의 여성이 평범한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스토리는 황당한 설정으로 이어지면서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이지요.
결국 지나친 상업적 논리로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는 현실이 서서히 부작용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톱스타를 캐스팅해야 드라마를 띄울 수 있고 돈벌이가 되는 상황이다보니 기획사에 소속된 유명배우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밖에 없습니다.
초고액 개런티를 주고도 스케줄을 빼지 못해 계약이 어려운 실정이니 전체 제작비의 상당한 부분이 톱스타 끌어오는데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걸 메꾸려면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상업적 코드로 기울게 되고 스토리도 그때 그때 입맛에 맞게 바꿀 수 밖에 없겠지요.
배우는 특정 작품의 배역이 결정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습니다. 작품이 잘못돼 한번 실망을 주면 이미지는 치명적이니까요. 다시 되살리는데는 더욱 어렵습니다. 목숨을 걸고 연기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지요.
김정은이 파문과 후폭풍을 감수해가면서 '출연거부'라는 극단적인 의사표시를 한데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래전부터 드라마 PD들도 조금만 이름이 알려지면 외주제작사로 독립하는 추세인데요. 상업주의로 치닫는 드라마 풍토에 대한 경각심이기도 하겠지요.
스포츠조선 온라인 뉴스팀장 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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