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또다른 정치공학?

입력 2005-09-02 11:43:41

정치공학(政治工學. Political Manipulation)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나가는 과정을 일컫는다. 정치의 기능을 체계화하고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적 방법인 정치공학(Political Technology)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정치공학이 발전한 나라로 일본과 중국을 많이 꼽는다. 일본의 에도 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치공학의 화신이라고까지 말한다. 중국의 삼국지는 정치공학의 진수가 넘쳐난다. 독일의 히틀러나 구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도 체제 유지를 위해 정치공학을 끊임없이 사용했다. 한 나라를 일사불란하게 통치하는 데는 정치공학적 수단이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치공학을 잘 활용했다고 평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전까지의 정치 역정을 보면 음습한 이미지의 정치공학과는 거리가 멀고, 또 이는 대선 승리에도 적지않은 기여를 했다. 대통령 스스로도 '열국지'를 예로 들면서 "요즘 정치공학 책을 보면 국민을 속이고 자극하는 기술이 수없이 나오는데 그것을 지도자의 제일 조건으로 써놓은 책을 보면 답답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노 대통령이 이제는 정치공학의 묘용에 빠져든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최근 잇따른 연정 관련 발언도 이 같은 맥락에서 풀이한다.

대통령이 어떤 자리인가. 그런데도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서라면 중도에 포기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역대 대통령들이 권력에 연연하다 쫓겨나거나 불의의 사건으로 숨지고, 권력에 집착해 총칼을 앞세우기도 했던 우리의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 같은 '대단한 결단'을 많은 국민은 오히려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니 문제다.그렇다고 해서 노 대통령의 의도가 현재로서는 실패한 것이 결코 아니다.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건간에 대통령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국이 흘러가 이제는 개헌론까지 대두되고, 가장 골치아픈 민생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나 과연 의도한 대로 끝까지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이제는 국민이 정치공학이라면 진저리를 내는데 작금의 정국 흐름이 대통령 탄핵 때와 흡사한 정치공학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당시 90%대에 이르렀다가 20%대로 곤두박질쳤고, 이후 탄핵의 소용돌이를 거친뒤 업무에 복귀하자 50%대로 껑충 뛰었다. 그리고 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을 제치고 152석이라는 과반수 의석까지 확보했다. 이에 고무돼 청와대로 열린우리당 의원을 초청, 만찬을 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며 "100년 가는 정당을 하자"고 흥겨워했던 때가 불과 15개월 전이다. 현재의 지지율은 또다시 20%대. 이런 상황에서 연정 관련 폭탄 발언이 계속 터져나왔으니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고도의 정치공학이란 의심을 사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정치공학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번에는 노 대통령의 승부수가 오히려 더 큰 실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노 대통령의 가장 큰 무기인 진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대결과 분열의 정치문화를 대화와 타협의 새로운 정치문화로 바꾸려는 참 의지라고 아무리 강조해봐야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않다.

상황이 이렇다고 노 대통령이 여기서 멈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간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또다른 폭탄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 많은 국민이 당혹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 인터넷 포탈사이트에는 "노 대통령의 뇌에 문제가 있다"고 한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 네티즌들이 꼽은 '기쁘고 행복한 뉴스'의 상위권에 올랐다. 또 다른 의원의 "대통령 하야하고, 국회의원도 동시 사퇴하자"라는 말 역시 상위권이었다. 민생 경제는 실종된 채 '대통령 하야'라는 엄청난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정신질환자라고 까지 조롱당하는 것이 작금의 우리의 정치상황이다. 이런 가운데서 살아가야하는 국민이 안쓰럽다.

허용섭 정치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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