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협박에 재미 붙인 재계

입력 2005-07-30 11:23:52

재계가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주장이 있다. 투자를 할 터이니 규제를 완화하라는 것이다. 특히 수도권에 공장을 신'증설할 수 있도록 하고, 출자총액제한제 등을 풀어 달라는 주문은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다. 말로 해서 안 되자, 수시로 성명을 내고 언론플레이까지 서슴지 않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상반기 재정 집중 투입에도 불구, 목표치를 훨씬 밑도는 성적표를 받아 든 정부로서도 답답한 노릇이다. 민간 투자가 확대돼야 경제가 회생될 터인데 재계가 계속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 참다못해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재계의 사보타주에 대해 투자는 게을리하면서 과도한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현금만 70조 원을 보유한 기업들이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투자를 못 하면서도 규제와 정책의 불투명성 타령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는 여전히 귀를 막고 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잠재 성장률을 높이고 고용을 창출하려면 기업 투자 활성화가 절실하다며 기업 규제 개혁이 투자 활성화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부 정책이 시장 경제 원칙에서 벗어나 경제 효율이 떨어지고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쇠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재계의 주장을 듣다 보면 재계는 경제 회복에 목을 맨 정부를 상대로 '치킨 게임'(chicken game: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으로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먼저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출자총액제한제를 비롯해 재계가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하는 조항들은 각종 예외 규정으로 유명무실한 상태다. 그런데도 재계가 정부를 계속 압박하는 것은 민간 투자 활성화를 빌미로 재벌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이번 기회에 모조리 벗어 던지겠다는 속셈이 아닌가.

재계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레드 오션(red ocean)에서 허우적거리며 정부 탓만 할 게 아니라 블루 오션(blue ocean)을 찾아 신규 투자에 나서는 게 옳다. 재계가 정부 정책을 불신하며 투자를 기피하는 사이, 다른 나라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다. 재계의 투자 사보타주는 부메랑이 되어 재계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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