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눈으로 다 빈치를 읽다

입력 2005-07-30 09:56:30

니체의 눈으로 다 빈치를 읽다/사카이 다케시 지음/개마고원 펴냄

'그림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철학하고 있다….' 니체, 프로이트, 바타유, 푸코, 바르트 등 철학자의 눈에는 화가와 그림이 어떻게 포착될까? 철학자들의 그림읽기는 무엇이 다른가?

'니체의 눈으로 다 빈치를 읽다'는 그림 속에 숨겨진 형상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던 여섯명의 현대철학자와 화가들에 주목한 책이다. 저자는 사카이 다케시 일본 호세이대학 문학부 교수. 그는 철학자들과 그들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화가들을 연결시키면서 화가의 일생과 시대적 배경, 그림의 탄생 과정을 해설하고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철학과 그림이 경계를 마주하고 있으며, 철학자의 사상과 그림에 나타난 화가의 사상이 500년의 시공을 넘어 일치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철학자들과 그들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화가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 자리에 독자들을 초대한 이 책에서 독자들은 화가의 삶과 그림의 탄생 과정 및 그 평가에 대한 저자의 유려한 해설을 좇다보면 화가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철학자들의 세밀한 분석에 심취하다 보면, 그림이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철학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다 빈치, 홀바인, 고야, 고흐, 칸딘스키, 톰블리. 생의 극한에서 얻은 절박함을 그림 속에 표현한 화가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화가들은 혹독한 시대사나 개인사로 인해 받은 고통을 그림의 내면에 표현했던 이들이다.

그 중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중세시대 인물이나 그리스도교 신앙에 속박되지 않았다. 그를 매료시킨 것은 '선도 악도 밀려난 거대한 힘'을 드러내는 전쟁과 홍수였다. 다 빈치는 보르자의 과감하고 격한 성격과 전쟁에 이끌려 보르자의 군사기술사가 되었으며, 전쟁의 끔찍함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르네상스 미술의 대가로 다 빈치를 꼽았던 니체 역시 '선과 악을 포괄하는 전례 없는 지평'에 대해 탐구했으며, 보르자의 디오니소스적인 성격에 이끌렸다. 니체는 르네상스기 화가들 중 오직 다 빈치만이 그리스도교를 넘어선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다 빈치의 회화를 그리스도교 도덕의 틀 안에 놓고 보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니체의 해석이 얼마나 빼어난지를 알 수 있다

니체는 단순히 다 빈치의 그림을 감상한 것이 아니다. 그 둘은 비슷한 삶을 살았고 비슷한 사상을 가졌다. 니체는 다 빈치처럼 고독했고,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으며, 그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다 빈치의 삶을 뼛속 깊이 경험했기 때문에, 니체는 다 빈치가 그림 속에 감추어둔 본심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바위산을 걸어가는 고독한 사상가'인 니체가 다 빈치의 숨겨진 내면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는 이유이다.

이들은 최후의 순간도 같았다. 디오니소스에 사로잡힌 채 니체는 광기의 늪으로 침몰했고, 다 빈치는 죽음의 유혹에 끌려들었다. 다 빈치 이외의 화가들도 모두 자신의 시대를 앞서는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그것을 그림에 표현했으며,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매혹된 화가들의 내면을 송두리째 체험하고 그림의 이면을 읽어냈다.

프로이트는 홀바인에게서 생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과 악마적인 힘의 활력을 감지했고, 바타유는 "고야가 파멸하는 현대 사회의 비통함 전체를 최초로 언급했다"고 평가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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