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아마추어리즘

입력 2005-07-28 10:59:05

노무현 정부를 놓고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심지어 독재는 참아도 무능은 못 참겠다는 소리도 들린다. 현 정부에 참여한 대학교수들까지 아마추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 정부를 아마추어라고 비판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대학교수들이다. 아이러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지성과 전문성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교수들이 서로를 아마추어라고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추어가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참신한 것은 분명하다. 최근 사의를 표명한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구태와 시류에 덜 물든 아마추어가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을 능력이 모자라는 아마추어가 쥐락펴락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현 정부의 주도 세력은 '소수 정권'이었던 김대중 정권 내에서도 '마이노리티(minority)'였다. 앞선 김영삼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은 그래도 부산'경남과 호남 출신 관료들이 떠받쳤다. 하지만 '튼튼한 지역 기반'이 없는 현 정부는 인재 풀(pool)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코드'가 맞는 대학교수들을 대거 등용하고 각종 위원회를 구성해 배치했다. 관료 조직의 경직성을 타파하고 교수들이 가진 전문성을 행정에 도입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시도의 성패를 속단하기 이르나,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 정부의 정책에 관여한 교수들이 아마추어로 비판받는 것도 정책을 집행하는 관료들을 장악하지 못하고 되레 휘둘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박정희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관료들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관료 집단의 파워가 커졌다.

대한민국 관료들은 개발독재 시대 이래 한국사회의 발전을 주도한 엘리트 그룹이다. 하지만 이들은 10년 불황을 겪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가 규제 철폐를 내세워도 새로운 규제를 계속 만들어 내는 이들이 관료들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국가 정책을 자기들 입맛대로 요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경제와 교육 정책이다. 대학입시 제도만 해도 입법'사법'행정부의 고위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 한국사회의 상층부 그룹이 몰려 사는 서울 강남의 아줌마들이 좌우한다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됐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망국적 부동산 투기 열풍이 시작된 곳도 강남이다. 정부가 수많은 부동산 정책을 내놓지만 늘 뒷북만 치는 꼴이 되는 것도 부동산 정책 입안자도, 집행자도 모두 강남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각종 정책 추진의 차질이 야당과 이른바 비판적인 언론의 비협조 때문이라며 대립 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게 바로 아마추어다. 아마추어 논쟁의 배후에도 관료들이 포진하고 있다고 의심된다. 자기들 이익과 상치되고 비위에 거슬리면 아마추어로 단정해, 오랜 유대를 맺어온 언론을 통해 매장시켜 버리는 것이다. '정치 10단' 노무현 대통령이 뜬금없이 연정론을 들고 나온 것도 여소야대 국면에서 공무원 장악력 저하와 이로 인한 국정과제 수행과 정책 추진의 차질을 고백한 것이 아닌가.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관료와 재벌, 이에 동조하는 보수 언론의 포위망에 갇힌 섬에 불과한 권력이다.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이상호 X파일'은 자본'언론'정치'관료 권력 등 4대 권력의 추악한 뒷거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판도라 상자의 일부인 셈이다. 성장론을 들고 나왔다가 분배론을 내세우는 등 노무현 정부의 각종 정책이 오락가락한 것도 관료들과 재벌의 조직적 저항 때문이다. 재벌과 함께 관료들의 준동을 끝내 제어하지 못하면 노무현 정부는 결국 아마추어 정권, 실패한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차기 정부의 핵심 의제도 정치 민주화가 아니라 경제 민주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개혁 세력이든, 보수 세력이든 차기 정권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있다.

조영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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