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의 교육상담실-마음의 감옥

입력 2005-07-26 08:20:45

고2 학생과 엄마가 상담을 하러 왔다. 열심히 공부하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 도움을 구하러 왔다고 했다. 학습 습관을 하나씩 물어보며 문제점을 검토하기로 했다. 학생은 어떤 문제를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철저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없다고 했다. 이런 학습 태도 때문에 항상 공부할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최대의 고민이라고 했다. 시험을 칠 때도 한 문제에 너무 오래 시간을 끌다가 다른 문제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공부한 부분은 다 맞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학생의 엄마에게 아들이 왜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아느냐고 물었다.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매사에 철저해야 함을 좀 지나치게 강조하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학생에게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수학 학습지를 풀면서 계산 실수로 답이 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때 어머니가 아는 문제를 틀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 문제를 풀고 나서 즉시 다시 검산한 후 다음 문제로 넘어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어떤 문제든 맞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 검산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암기할 때도 그런 자세를 유지했다. 한 페이지를 다 암기해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 페이지를 다 암기하는 데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 학생은 매사에 '완벽'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에밀 샤르티에는 "당신이 단 하나의 생각만 가지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라고 했다.

치료를 시작했다. 국사 교과서를 1~50페이지까지 공부하기로 했다. 전에는 무조건 처음부터 외워나갔지만 이번에는 외우지 말고 그냥 소설을 읽듯이 전체 문맥을 생각하며 가볍게 읽어나가라고 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밑줄만 치고 넘어가라고 했다. 천천히 정독하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잠시 쉬게 한 후 다른 과목을 같은 방법으로 공부하게 했다. 이틀 뒤에 국사 교과서를 내놓고 전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읽게 했다. 이번에는 한 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에는 전처럼 다른 과목을 공부하게 했다. 이틀 뒤에 또다시 읽게 했다. 세 번째는 밑줄 쳤던 주요 부분을 암기하라고 했다. 그런 다음 그 범위에서 출제한 30문항을 시험 치게 했다. 단 한 문제만 틀리고 다 맞았다. 한 술 밥에 배부를 수 없듯이 무엇을 단번에 암기하거나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실제 학습 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깨닫게 해 주었다. 전에는 하루 저녁 내내 한 과목만 붙잡고 지치도록 외웠다고 했다. 그 때는 공부가 두려웠다고 했다. 어떤 과목이든지 먼저 이해한 후 암기해야 한다.

방학을 맞아 부모와 자녀는 서로를 가두고 있는 어떤 '마음의 감옥'이 없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털어놓고 상담 받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은 적극적인 사고나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 없고, 일이나 학습에서 생산성이 없다. 사람을 가두는 감옥은 잘못된 습관을 말한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늘 가슴과 귀를 열어놓는 사람은 아집이나 독선의 감옥에 갇힐 위험이 낮다. 자기 자신을 옥죄는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자신의 생활 습관, 생각하는 방법, 신념 체계 등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가장 좋은 점검 방법은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객관화시켜 보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털어놓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상담 왔던 그 학생은 완벽주의의 감옥에서 벗어났고 올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윤일현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ihn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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